원격의료 허용 안돼 국내선 쓸 수 없는 의료기기들
원격의료 허용 안돼 국내선 쓸 수 없는 의료기기들
  • 이영주 기자
  • 승인 2018.10.26 13:40
  • 호수 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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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발 의료기기들, 언제까지 무용지물로 놔두나

[백세시대=이영주기자]

손가락에 끼면 삼방세동 체크하는 반지 형태 심장 진단기기 못써

스마트워치 심전도측정기능도 불가… 정부, 활용방안 마련하기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는 불법이다. 때문에 일부 신의료기기들이 국내서 출시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워치(사진)도 규제에 막혀 심전도 측정 기능 등이 국내선 서비스되지 못하고 있다.
의사-환자간 원격의료는 불법이다. 때문에 일부 신의료기기들이 국내서 출시되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워치(사진)도 규제에 막혀 심전도 측정 기능 등이 국내선 서비스되지 못하고 있다.

#1. 당뇨 환자 A씨는 병원에 직접 가지 않고 연속혈당측정기의 데이터를 의사에게 전송해 당뇨약을 처방받는다. 

#2. 체내에 인공심박동기를 이식한 부정맥 환자 B씨는 단말기를 통해 심박동 정보를 전문의에게 실시간으로 보낸다. 이를 통해 전문의는 B씨에게 위험신호가 감지됐을 때 병원에 올 것을 권고한다. 

이 상황들은 해외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다. 관련 의료기술이 이미 개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법상 원격의료가 불법인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원격의료란 환자가 직접 병·의원을 방문하지 않고 통신망이 연결된 모니터 등 의료장비를 통해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 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와 IT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원격의료가 활성화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법과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국내 신의료기기들 해외로

원격의료는 △원격 협진 △원격 모니터링 △화상 진료와 같은 비(非)대면 진료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의사-의료인이 원격으로 의료 기술을 지원하고 조언해 주는 원격 협진만 국내에서 허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의사-환자간의 원격의료는 불법이다. 

이런 규제에 국내 기술로 개발됐지만 국내 출시가 불투명한 신의료기기들이 나오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스카이랩스가 만든 웨어러블(몸이나 옷에 착용할 수 있는) 심장 진단기기 ‘카트’도 규제에 막혀있다. 카트는 반지 형태로 되어 있어 손가락에 끼고 있으면 생체신호를 감지해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으로 심방세동을 확인하고 그 정보를 의사에게 전달하는 기기다. 진단 정확도가 98%로 손목 측정형 밴드(95.3%)보다 높다는 것이 개발사측의 설명이다.  

유럽에서는 카트에 대한 반응이 상당하다. 스카이랩스는 카트로 지난 8월 독일에서 열린 ‘유럽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에서 1위 스타트업으로 선정됐으며, 지난해부터는 독일의 유명 병원과 파트너십을 맺고 공동으로 심장질환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선 원격의료 기능 비활성화

스마트폰과 손목에 시계처럼 착용하는 스마트워치의 일부 서비스도 원격의료 규제를 받는다.

삼성전자는 작년 4월부터 미국에서 갤럭시 스마트폰을 이용한 원격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이 서비스 자체가 불법이라 제공하지 않고 있다. 11월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는 애플의 스마트워치 ‘애플워치4’는 심전도 측정 기능이 탑재돼 관심을 모았다. 어디서든 간편하게 심전도를 파악하고 의사에게 관련 정보를 보낼 수 있는 기능이지만, 국내 소비자는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심전도 측정이 질병 진단과 관련된 기능이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복막투석기, 이식형제세동기, 인공심박동기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환자의 투석 정보를 기록해 의료진에 전송하는 자동복막투석기가 있지만, 국내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부정맥 환자에게 이식하는 삽입형 제세동기와 인공심박동기 역시 원격 모니터링 기능이 있다. 그러나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만 사용될 뿐 국내에서는 기능을 차단한 채 사용되고 있다. 

삽입형 제세동기를 판매하는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는 “원격 모니터링이 가능하면 환자가 잦은 내원의 부담을 덜 수 있다”며 “특히 거동이 불편하거나 병원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노인 환자들은 언제 병원을 방문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어려운데,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적절한 시점에 의사가 환자에게 내원을 요청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문제로 허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의사협회는 원격의료 반대 

원격의료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의료인 단체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일부 도서지역 등에서 시범사업만 19년째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대 입장에서는 대형병원 쏠림 현상의 악화, 동네의원의 몰락, 의료사고 위험 증가 등의 이유를 내세우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원격의료 허용이 의료영리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전국시도의사회장단협의회는 지난 8월 27일 성명을 내고 “오진의 가능성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정보 유출, 기기 구축비용 증가, 과잉진료 등 여러 문제점이 유발될 것”이라며 “정부의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 논의를 일체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찬반 양측의 대립이 첨예한 가운데, 정부는 대안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지난 10월 24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하는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된 정부의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에는 스마트폰이나 웨어러블 기기 등을 활용한 건강관리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비(非)의료기관이 제공하는 건강관리서비스의 범위와 기준을 설정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 행위와 웨어러블 기기 등을 통해 할 수 있는 행위를 구분할 매뉴얼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기준이 마련되면 스마트워치를 통한 혈압 체크 등의 사용이 국내에서도 가능해 질 전망이다.

이영주 기자 

yjlee@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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