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노인회 지회, 지자체서 남성 요리교실 열어…“남성 어르신도 요리 배워야 사는 시대”
대한노인회 지회, 지자체서 남성 요리교실 열어…“남성 어르신도 요리 배워야 사는 시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1.02 10:44
  • 호수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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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혼자 되거나 배우자 아플 때 대비해 배운다”… 부엌일 기피는 옛말

2015년 이후 요리 배우기 급속 확산… 서울 구로구선 4개 동시 개설

남성 어르신들도 요리를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관련 요리교실이 인기 문화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은 구로구 남성 어르신 요리교실에 참여한 최용남(왼쪽), 박경서 어르신이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요리하는 모습.	사진=조준우 기자
남성 어르신들도 요리를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관련 요리교실이 인기 문화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진은 구로구 남성 어르신 요리교실에 참여한 최용남(왼쪽), 박경서 어르신이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요리하는 모습. 사진=조준우 기자

“맨날 라면만 먹을 순 없지 않아요?”

지난 10월 30일 서울 롯데마트 구로점 문화센터에서 만난 박원조(72) 어르신은 요리를 배우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문화생활을 즐기는 아내가 외출이 잦아지자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 자연스레 늘었고 이는 요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능숙하게 앞치마를 두르던 박 어르신은 “친구들 중에도 요리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100세시대에 맞춰 남성 노인들도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엌일이 여성의 전유물이란 인식은 이제 옛말이 됐다.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남성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요리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관련 요리교실이 전국적으로 개설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70대 이상 남성 어르신들은 대부분 ‘남자는 부엌에 출입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관습 때문에 평생을 ‘요리 무식자’로 살아왔다. 하지만 급격한 고령화로 혼자 지내는 노인들이 대폭 늘어나자 남성 어르신들도 어쩔 수 없이 요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로 인해 2010년대 접어들면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남성 어르신 요리교실을 하나둘 열기 시작했다. 다만 늘어나는 속도가 지지부진했고 단발성 프로그램으로 끝나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2015년부터 서울‧경기지역에서 본격적으로 관련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개설하고 어르신들의 인식이 서서히 바뀌면서 급속도로 확산, 현재는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남성 어르신 요리교실을 필수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 경로당과 노인복지관뿐만 아니라 치매안심센터 등지로도 교육이 확산되면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먼저 대한노인회에서는 충남 서천군지회, 전남 목포시지회, 경북 영주시지회 등서 잇달아 남성 어르신 요리교실을 열면서 노인들의 인식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특히 그간 반찬배달 등 도움에만 의존했던 독거노인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 지역사회로부터 자립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했다며 호평을 받았다.  

서울 구로구의 경우 주민자치참여 예산으로 주민 요리교실을 7개 개설했는데 그중 4개가 남성어르신 전용 요리교실이다. 구로구는 남성도 요리를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늘면서 2013년 처음 요리교실을 개설했다. 당시에는 30~40대 직장인 남성이 많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은퇴자를 중심으로 노인세대까지 유입되자 올해 처음으로 남성 어르신 요리교실을 개설했다. 12주 과정으로 봄, 여름, 가을과정을 진행했는데 매 기수별로 높은 참여율을 보였다.

구로구는 어르신들이 요리교실 이후에도 능동적으로 요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식재료 활용법을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이날 수업에서는 제철을 맞은 뿌리채소 중 연근을 활용한 뿌리채소피클과 지인들에게 요리를 대접할 때 활용하기 좋은 목살동파수육을 만들었다. 수업에 참여한 10여명의 어르신은 강사의 한마디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수첩에 연근의 각종 효능을 비롯 활용법 등을 꼼꼼히 적어나갔다. 

이후 본격적인 요리가 시작되자 어르신들의 칼질이 시작됐고 난타 공연장에 온 듯 흥겨운 리듬이 교실을 가득 메웠다. 칼질 속도도 더뎠고 모양도 들쭉날쭉이었지만 미소만큼은 떠나지 않았다. 어르신들 대부분은 서서 1시간 30분 가까이 수업이 진행하는데도 피곤한 기색 없이 시종일관 요리를 즐겼다. 

이정숙 강사는 “남성 어르신들의 요리를 배우겠다는 열정은 여성을 압도한다”면서 “전체적으로 서툴러서 여성들보다 시간은 더디지만 완성품은 뒤처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참여한 어르신들은 요리를 통해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딸의 고마움을 알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박경서 어르신(75)은 “평생 얻어먹기만 해서 수고하는 식구들과 요리의 소중함을 잘 몰랐다”면서 “남자도 이제는 무조건 요리를 배워야 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최 어르신의 손에 이끌려 요리교실에 참여한 최용남(75) 어르신의 사연도 이색적이었다. 4대 독자여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까지 집안일에 손하나 까딱한 적 없다던 그는 올해 요리교실에 참여한 이후 밑반찬을 도맡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요리가 즐겁다”며 운을 뗀 최 어르신은 얼마 전 친구들과 단체 여행을 가서 20여명이 함께 도라지를 깐 후 요리교실에서 배운 도라지 찹쌀가루 무침을 술안주로 만들었다는 무용담을 전했다.

최 어르신은 “혼자 살 때를 대비하고 그동안 매끼를 챙겨준 아내를 위해서라도 남성 노인들이 요리를 배우는 것은 필수”라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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