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디자인미술관 ‘만화와 도자기의 만남’ 전, 한국 만화 1세대와 도예 명인의 환상적 ‘앙상블’
한가람디자인미술관 ‘만화와 도자기의 만남’ 전, 한국 만화 1세대와 도예 명인의 환상적 ‘앙상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1.02 14:36
  • 호수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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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한국원로만화가협회‧길성도예 주최… 권영섭, 김성환, 사이로 등 참여

고바우 영감, 머털도사 등 대표 캐릭터 특수유약으로 원형 도기에 재현

김성환, 2016년작(왼쪽). 권영섭, 2016년작
김성환, 2016년작(왼쪽). 권영섭, 2016년작
권영섭 한국원로만화가협회장이 자신의 만화 캐릭터를 백자 도자기에 표현한 작품 앞에 서 있다.
한국원로만화가 사이로 씨가 자신의 만화 캐릭터를 백자 도자기에 표현한 작품 앞에 서 있다.

봉선이, 고바우 영감, 고인돌, 야로 씨, 머털도사, 맹꽁이 서당…. 지난 10월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선 대한민국 만화계의 한 획을 그은 대표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다만 평소와 달리 신문 지면도 만화책도 아닌 다소 생소한 곳에 그려져 있었다. 도예명인 길성 작가가 빚은 명품 그릇 속에 새겨져 있었다. 그것도 흑백이 아닌 컬러로 말이다. 한국원로만화가협회 권영섭 회장은 “한국 만화 1세대 대표 캐릭터들이 1300도의 불꽃을 이겨내고 도자기로 재탄생했다”면서 “만화의 지평을 한 단계 넓힌 의미있는 만남”이라고 말했다. 

한국 만화 문화를 이끌어온 원로 만화가들이 도예명인들과 손잡고 ‘불꽃으로 승화시킨 불멸의 이미지: 만화와 도자기의 만남전’을 열었다. (사)한국원로만화가협회와 길성도예가 주최한 이번 전시는 10월 26일부터 11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도자기는 고온으로 구워지면서 열에 의해 색이 날아가기 때문에 의도한 대로 풍부한 색감을 표현하기 힘들다. 주로 단색으로 표현되는 만화의 경우도 일정하게 색을 구현하기 어렵다. 허나 이런 난점을 극복했다. 사이로 화백은 “종이뿐만 아니라 여러 매체에 그림을 평생 그려왔지만 도자기에 그린 것은 처음”이라면서 “참여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지만 표현한 그대로 색이 나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건 길성 작가가 직접 개발한 80여개 색의 유약이었다. 길성도예의 대표를 맡고 있는 길 작가는 1970~1980년대 신문만화를 그리던 화가로 한국원로만화가협회에 몸담고 있다. 40대부터는 도자기에 심취해 현재는 내로라하는 도예계의 명인으로 불리고 있다. 비록 만화에선 손을 뗐지만 애정은 버리지 않았던 그는 웹툰에 밀려 고전하는 정통만화계에 힘을 불어넣고자 원로만화가협회에 협업을 제안했고 2년간의 작업 끝에 세상에 작품을 공개하게 됐다. 100여점의 작품 중 엄선한 32점을 선보였다.   

전시는 크게 원로 화백과 협업작품을 소개하는 ‘협업’ 섹션과 길 작가와 그의 딸이자 전수자인 길기정 작가의 도예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구성된다. 

이번 전시는 원로 만화가와 도예명인의 만남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사진은 길성, 길기정 도예가   (왼쪽 첫번째 두번째), 권영섭 회장, 사이로, 윤승운, 박수동, 이소풍, 이현세 (왼쪽에서 다섯번째부터 순서대로) 화백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조준우기자
이번 전시는 원로 만화가와 도예명인의 만남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사진은 길성, 길기정 도예가 (왼쪽 첫번째 두번째), 권영섭 회장, 사이로, 윤승운, 박수동, 이소풍, 이현세 (왼쪽에서 다섯번째부터 순서대로) 화백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조준우기자

먼저 협업 섹션에는 권영섭 회장을 비롯한 협회 회원 16명의 작품을 소개한다. 원로만화가협회는 1940년대 우리나라에 만화라는 형식이 도입돼 대중에 영향을 주기 시작한 때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 만화문화의 토대를 구축하고 발전시켜온 만화 1세대를 대표하는 모임이다. 원로 만화가들은 당시 국내 주요 일간지들의 4컷 만화와 만평을 통해 정부 정책을 익살스럽고 신랄하게 풍자·비판하며 여론 형성을 주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성환, 박수동, 사이로, 신문수, 이두호 등 내로라하는 원로 화백들은 길 작가가 빚은 원형그릇에 자신의 대표 캐릭터를 수놓았다. 

도자기에 새겨진 익숙한 캐릭터들은 정겨움을 선사한다. 김성환 화백은 자신의 대표 캐릭터인 고바우 영감이 낚시를 하고 정자에 엎드려 사색을 즐기는 모습을 그렸다. 마치 뒤로 물러서서 사회를 관망하면서 깊이 있는 조언을 해주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박수동 화백의 ‘고인돌’, 사이로 화백의 ‘물구나무로 본 세상’, 신문수 화백의 ‘만공선생’ 등도 위트 넘치는 모습으로 관객들을 맞았다. 

반대편에 자리한 길성‧길기정 작가의 도예작품들도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달항아리’로 상징되는 순백자 작품과 임진왜란 때 사라진 이도다완(찻사발)을 복원한 작품이 큰 관심을 받았다. 이도다완은 유약 균열이 육각형으로 고르게 나 있고, 굽 부분은 매화나무 껍질처럼 갈라졌으며, 유약이 묻지 않은 부분은 검은 색을 띄는 특징이 있다. 이도다완을 현미경으로 보면 무수한 다공질이 발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다공질이 바로 차의 타닌이나 카테킨, 카페인 등의 유독성분을 해독시켜주고 차맛을 부드럽게 해준다고 한다.  

또 실크 기법을 활용해 독특한 질감으로 도자기에 십장생도를 그린 작품도 눈길을 끌었다. 실크 역시 불에 약하지만 길성 작가는 자신만의 비법으로 타지 않게 만들었고 이를 활용해 기존 도자기에선 볼 수 없는 입체적인 모습을 선보였다.

길성 작가는 “이번 도예와의 만남을 통해 만화의 가능성이 보다 확장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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