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꼭 해야 할까”
“결혼은 꼭 해야 할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11.09 13:52
  • 호수 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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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한 SNS 세상… 새 인생 좌표를 그려보라

“결혼? 난 안할 거야”. 누구나 이런 생각을 했을 테지만 대부분은 이 낡은 사회제도에 순응해 식을 올리고 함께 산다. 그런데 최근 수천년간 인류 생존과 함께 한 관습을 무력화시키는 파격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결혼은 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이 해야 한다는 사람보다 처음으로 더 많아진 것이다. 

통계청은 11월 6일, ‘2018년 사회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같은 주제로 2년에 한 번씩, 13살 이상 시민 3만9000여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48.1%로 2년 전 51.9%보다 3.8%포인트 줄어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그런데 통계 결과를 더 들여다보면 결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결혼은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답변이 46%로 나타난 것이다. 남녀가 함께 사는데 결혼은 필수조건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해졌다는 의미다. 아울러 남녀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에는 56.4%가 동의해 처음으로 조사 대상의 절반 이상이 결혼 없는 동반자생활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사는 행태는 여러 가지다. 결혼식은 생략한 채 입양아를 키우며 사는 이들, 자식 없이 동거하는 커플, 신성일·엄앵란처럼 결혼은 했지만 생의 절반을 남남으로 지내는 경우 등. 

대표적인 동거 커플이 프랑스의 철학자와 작가인 사르트르·보부아르이다. 사르트르는 1929년 11월, 보부아르에게 계약결혼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사르트르가 내세운 세 가지 전제조건 아래 2년간 계약결혼에 들어갔다. 세 가지 조건이란 첫째, 서로 사랑하고 관계를 지키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서로 허락한다. 둘째, 상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다. 셋째, 경제적으로 독립한다.

이들 사이에는 자식을 낳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전제도 깔렸다. 사르트르는 자신이 자식을 억압하고 권위에 찬 아버지가 될 것을 염려했다. 보부아르는 아기에게 젖을 물려주거나 기저귀를 갈아주는 여자들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만약 둘 중 자식을 낳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처음부터 이 계약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둘은 서로에게 만족하고 사랑만 하는 사이가 아니었다.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의 옷차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페미니스트 보부아르는 수수한 옷차림에 꾸미는 걸 싫어했다. 반면에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의 옷이 더럽다거나 스타킹이 찢어졌다는 이유로 외출하는 것을 거절하기도 했다.

위기도 몇 차례 찾아왔다. 사르트르는 여성편력이 심했다. 모렐 부인, 시몬느 졸리베, ‘달의 여인’이란 별명을 지닌 프랑스 여자와 벌였던 애정행각을 보부아르에게 낱낱이 털어놓았다. 

두 사람은 계약결혼의 전제조건도 충실히 지켰다.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의 제자, 러시아 여자와 사랑에 빠지고, 보부아르 역시 사르트르의 제자와 관계를 맺었다. 두 사람은 매년 10월, 계약결혼을 기념하는 소소한 시간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사르트르는 “이제 더 이상 우리 둘 사이에 계약이 필요 없소.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고 또 그래야만 할 거요. 우리가 서로 이해하는 만큼 우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말이오”라고 말했다. 보부아르도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두 사람은 한 명이 죽기 전까지는 절대 헤어지지 않는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함께 나란히 공동묘지에 묻혔다. 

결혼을 기피하는 건 살기 힘들어진 현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번 통계 수치는 결혼제도의 장단점에 대해 냉철히 분석하고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 왔다는 사실도 일깨워준다.  

외롭고 무료한 시간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동호회가 메꿔주고, 끼니의 번거로움을 편의점 도시락과 음식배달이 해결해 주는 편리한 세상에 사르트르·보부아르와 같은 현명한 인생 선배들의 도전적인 삶을 각자의 인생 좌표에 새로 편입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거기에 나이가, 남의 시선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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