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중국의 시성 두보, 만년 낙방생이었다
[85]중국의 시성 두보, 만년 낙방생이었다
  • 글‧그림=김성환
  • 승인 2018.11.09 13:56
  • 호수 6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바우의 유식한 잡학 왜?

중국 최대의 시성으로 당나라 시대 두보와 이백을 꼽는다. 그런데 두보는 과거 등 시험 운은 극히 나빠 평생을 어렵게 지냈다.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7세때 부터 시를 쓰기 시작, 15세땐 낙양에까지 이름이 알려졌을 정도였다. 과거시험 공부도 열심히 했으나 24세때 시험에 낙방하자 돈벌이를 위해 각처로 방랑하기도 했다. 
이후 몇차례 관리등용시험을 보았으나 낙방하자 황제 현종과 고관들에게 시를 지어 바치는 등의 노력으로 재능을 인정받아 44세가 되던 해에 겨우 관직을 얻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안사의 난’이 일어나 피란가다가 반란군에 잡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말년에 안주할 곳이 없어 호남의 상강에서 선상생활을 하다 59세때 세상을 떠났다. 중국이 세계 문학사상 가장 자랑스러웠던 시대라고 여기는 당나라 때 문학의 꽃을 활짝 피운 이가 만년 낙방생이던 두보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