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어르신이다
아프니까 어르신이다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18.11.09 14:02
  • 호수 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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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예전에 함부로 비난했던 

아줌마들의 무식한(?) 행동들

무릎 관절 아프고 힘 달리니

내가 그대로 하고 있어

아, 그렇게 욕할 게 아니었는데…

지하철 탈까 버스 탈까. 아님, 어쩌다 나온 서울 나들이인데 그냥 택시 탈까. 고민하던 순간 버스정류장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깔끔한 정류장 의자며 지붕이며, 위에 걸려있는 모니터에서 나오는, 노선버스들의 여러 가지 정보들. 멋지다, 우리나라. IT 대국답다. 

내가 탈 버스는 휠체어 진입이 가능한 저상버스로 3분 후 도착이란다. 광화문에서 명동입구를 지나 남산터널로 해서 강남대로를 통해 양재 꽃시장을 거쳐 대치동까지 가는 쾌적한 전기버스. 카드로 요금을 내고 사방을 둘러보니 앉을 자리가 없다. 내릴 채비를 하고 있는 젊은 여자 앞에 섰다. 의자에 앉아서 좌우를 둘러보거나, 들여다보던 핸드폰을 가방에 넣거나 하는 행동은 대개 내릴 준비를 하는 거다. 

어라.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는 눈을 감는다. 사람 잘못 찍었나 보다. 뒷줄로 옮겼다. 창밖을 열심히 두리번거리는 남학생 앞에 섰다. 그도 또 눈을 감는다. 

사람이 많아 그런가. 숨이 탁탁 막히고 무릎은 쑥쑥 쑤셔오고 머리까지 어지럽다. 내려서 택시로 갈아탈까 싶어 창밖을 보니 남산터널 앞이다.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줄줄이 차들이 서있다. 도로인지 주차장인지 헷갈린다. 내릴 수도 없고 내린다 해도 도로 한복판이다. 물론 택시도 없다. 

손선풍기에 코를 처박고 있는, 여대생인 듯 보이는 여자 옆으로 다가갔다. 내 코를 살며시 선풍기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녀가 인상을 쓴다. 이것도 아니구나. 식은땀은 줄줄. 컨디션이 영 아니다. 주저앉고 싶다. 사람이 많아 주저앉을 수도 없다. 

바로 그때, 저 뒷좌석 아줌마 한분이 부스럭대며 내릴 준비를 한다. 재빠르게 사람들을 밀치면서 어깨에 걸었던 핸드백을 손에 쥐고 그 자리에 던지며 ‘아무도 안 앉으시면 제가’라고 중얼거리며 그 자리에 엉덩이를 걸치며 쑤시고 앉았다. 드디어 자리 획득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도저히 너무나 창피하여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냥 눈 감고 가자. 휴우. 이제야 막혔던 숨통이 좀 열린 것 같다. 

무식한(?)아줌마들의 3가지 특징이 있단다. 하나, 버스나 지하철에 빈자리 났을 때 ‘가방 던져 자리 맡기’. 둘, 지하철 계단 오르내릴 때 양손으로 사람들 밀치며 다니기. 셋, 짧은 뽀글이 파머(?). 나는 드디어 오늘 ‘가방 던져 자리 맡기’까지 해봤다. 이제야 비로소 그 3가지 특징을 다 구비한 완벽한 무식한 아줌마가 되었다. 

하지만 3가지 특징 모두가 변명은 있다. 첫 번째는 당이 떨어져서인지 무릎관절 때문인지 119를 부르고 싶을 만큼 다리가 풀리고 식은땀에 헛구역질까지 나는 그 상황을 겪어보면 누구든 가방 던져 자리 맡는 그 애절한 심정쯤은 이해할 게다.

두 번째는 부실한 무릎 탓이다. 지하철 계단에서 잘못하면 바삐 뛰어다니는 젊은이들 틈에 넘어지기 십상. 그럴 때를 대비해 미리 사람들을 밀어서 달려오는 사람들을 저지하는 거다. 젊은이들이야 넘어지면 금방 일어나 또 뛰면 되겠지만 우리 아줌마들은 넘어지면 뼈가 으스러진다. 

재탕 삼탕 뽀얗게 우려내고 남은 사골 뼈를 한번 만져보라. 손으로 만져도 부서지지 않던가. 우리 엄마들의 살과 뼈를 가마솥에 뽀얗게뽀얗게(?) 우려내어 자식들 하나둘 다 키우고 나면 우리들 뼈도 다 그렇게 부서지는 그 사골 뼈 신세가 되는 거다.

세 번째, 뽀글이 파머(?)도 마찬가지다. 어느덧 머리숱은 빠져 머리통이 군데군데 드러날 지경. 이럴 때는 허연 머리통을 어느 정도 가려주는 머리손질이 필수다. 품위 있는 굵은 웨이브보다는 오랫동안 꼬불꼬불 머리통을 가려주는 뽀글이 파머(?)가 제격인 게다.

예전에는, 노인들이 꽃을 보고 중얼거리시며 말하시는 걸 볼 때마다, 심심하고 무료하셔서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무료하고 심심해서가 아니다. 나이 들면서 꽃들의 언어를 이해할 만큼이나 점점 더 지혜로워졌기 때문이다. 내 이런 모든 것들을 젊었던 예전 그때 그 시절에도 미리 알았더라면, 경험해보지도 않고 함부로 남의 행동을 비난하는 실수 따위는 하지 않았을 터인데.

‘다음은 양재 꽃시장.’ 목적지 안내방송을 듣고 살며시 눈을 떴다. 어느덧 버스가 텅텅 비었다. 맨 뒷자리에 졸고 있는 남학생 한 명뿐이다. 시치미 뚝 떼고 천천히 우아하게 버스에서 내렸다. 아, 참으로 고단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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