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뮤지엄 ‘케니 샤프, 슈퍼 팝 유니버스’ 전, 핵, 쓰레기문제 등 유쾌하게 비판한 ‘팝 아트의 황제’
롯데뮤지엄 ‘케니 샤프, 슈퍼 팝 유니버스’ 전, 핵, 쓰레기문제 등 유쾌하게 비판한 ‘팝 아트의 황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1.09 14:18
  • 호수 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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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1970년대 뉴욕 대중문화 성지 ‘클럽57’서 키스 해링 등과 작품 활동 

핵 문제 비꼰 ‘에스텔의 죽음’, 쓰레기 유토피아 ‘코스믹 카반’ 인상적

이번 전시에서는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바스키아 등 전설적인 팝 아트 작가와 동시대에 활동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케니 샤프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사진은 그의 대표작인 핵 폭발을 연상케 하는 ‘피카붐’.
이번 전시에서는 앤디 워홀, 키스 해링, 바스키아 등 전설적인 팝 아트 작가와 동시대에 활동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한 케니 샤프의 대표작을 소개한다. 사진은 그의 대표작인 핵 폭발을 연상케 하는 ‘피카붐’.

지난 11월 2일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 들어서니 난데없이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는 미러볼이 쉴 새 없이 돌아가고, 경쾌한 비트에 추억의 팝송들이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입구를 잘못 찾았나 싶은 그때 벽면에 붙어 있는 사진들이 미술관임을 알게 해줬다. 팝 아트의 아이콘 키스 해링(1958~1990)과 198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존 섹스(1956~1990) 등 당시 대중문화를 이끌던 예술가들의 아지트인 클럽57을 재현한 공간이었다. 이곳 출신 아티스트들 대부분이 불행한 죽음을 맞으며 즐거움을 추구하는 클럽57의 정신마저 사라질 뻔 했지만 또 다른 걸출한 스타 작가가 있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슈퍼팝의 창시자 케니 샤프(60) 이야기다. 

앤디 워홀, 키스 해링과 함께 팝 아트와 거리 예술의 새 역사를 쓴 케니 샤프를 소개하는 대규모 기획전이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3월 3일까지 진행되는 ‘케니 샤프, 슈퍼 팝 유니버스’ 전에서는 1970년대부터 샤프가 만들어온 회화, 조각, 영상, 사진 등 100여점을 선보인다. 특히 한국 관람객들을 위해 샤프가 특별히 그린 벽화도 준비됐다. 그림을 전혀 몰라도 전시장 전체가 눈이 즐거운 알록달록한 색으로 꾸며져 남녀노소 누구라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서부 출신인 케니 샤프는 1978년 동부인 뉴욕으로 건너와 미술을 공부했다. 하지만 그가 진짜 미술을 배운 곳은 강의실이 아닌 당시 ‘핫한’ 청춘들이 열광했던 ‘클럽 57’이었다. 롤모델인 앤디 워홀(1928~1987)을 만나고 동년배인 키스 해링과 어울리며 미술에 흑인들의 힙합 문화와 패션 등 대중문화를 더하는 새로운 실험을 하며 자신만의 미술 세계를 펼쳐갔다. 동료들의 잇단 죽음에도 좌절하지 않고 미술 활동에 매진한 그는 팝아트에서 더 나아간 ‘팝 초현실주의’와 ‘슈퍼팝’이란 용어를 만들며 ‘팝아트의 황제’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다.

1970년대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클럽57 재현공간을 지나면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된다. 샤프는 익살스런 만화 캐릭터에 형광색을 사용, 핵폭발과 지구 종말 등 심각한 주제를 다룬다. 미국의 대표적인 공상과학 만화였던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과 미래시대 잭슨가족의 내용을 차용해 독특한 외계생물체를 창조하고, 불교의 만다라 상과 만화캐릭터를 혼합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화려한 색채와 귀여운 캐릭터는 작가 특유의 유머와 결합해 현실의 공포와 불안을 색다르게 보여준다. 

그의 대표작 ‘에스텔의 죽음’
그의 대표작 ‘에스텔의 죽음’

‘에스텔의 죽음’(Death of Estelle)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샤프가 뉴욕 백화점 매장에 전시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작품이다. 외계인 덕분에 핵전쟁을 피해 지구를 떠난 여성(에스텔)의 모습이 연달아 펼쳐진다. 우주선 밖으로는 ‘버섯구름’ 영상이 나오는 텔레비전이 둥둥 떠다닌다. 어린 시절 모든 사람이 우주에 갈 것이라고 상상했던 그는 냉전시대,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 사고(1979) 등을 겪으면서 핵전쟁에 대한 공포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공상과학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을 통해 그는 당시 미국인들이 느낀 감정을 익살스럽게 풀어냈다.

액체괴물처럼 줄줄 흘러내릴 듯한 모습에 커다란 눈, 코, 입이 우스꽝스러운 캐릭터 ‘블롭(Blobz)’ 시리즈는 작가 특유의 기괴하면서도 유쾌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슈퍼팝’ 시리즈는 현대사회, 특히 소비사회와 예술의 결합을 보여준다. 아직 멀쩡한 상품들이 버려져 쓰레기로 전락하는 현대 물질주의와 소비사회의 폐해를 드러낸 것이다. 

이는 전시의 백미인 ‘코스믹 카반’ (Cosmic Cavern)에 잘 나타난다. 버려진 물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유토피아’ 코스믹 카반은 그가 1981년, 키스 해링과 함께 살던 아파트의 옷장에 설치한 공간에서 비롯됐다. 플라스틱 폐기물에 형광 페인트를 칠한 독특한 우주 공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관람객 50명이 기증한 폐장난감을 더했다. 한 구석에는 TV를 층층이 쌓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에 대한 경외심을 담았다.

샤프의 작품은 가볍고 현란하다. 눈에 쉽게 들어오고 메시지도 선명하다. 만화 캐릭터가 많이 등장해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샤프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술이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미술관이나 갤러리 벽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지루하고 따분한 일상을 탈출하게 하는 예술의 힘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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