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딱지만 붙으면 ‘묻지마’ 예산
저출산 딱지만 붙으면 ‘묻지마’ 예산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11.16 13:42
  • 호수 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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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평등 사업에 쓰이는 성인지 예산도 끼워넣기 식 편성

대한민국 국민은 자나 깨나 세금을 낸다. 돈을 벌면 소득세·법인세를 내고 소비를 하면 부가가치세, 재산을 보유처분하면 재산세·양도소득세를 낸다. 상속 증여에도 최고세율 50%가 부과된다. 

이렇게 거둬간 세금을 정부는 원래의 목적·취지에 맞게 온전히 바르게 쓰는 걸까. 불행히도 그렇지가 않다. 정부가 엉뚱한 데다 세금을 투입하는 대표적인 예가 ‘저출산’이다. 정부가 내년도 예산 470조원에서 저출산 대책에 책정한 돈이 24조1430억원이다.  

우리나라는 저출산이라는 국가적 재앙에 맞닥뜨려 있다. 한 여자가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합계출산율)가 1명을 겨우 넘는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출산을 뒤로 미룬 채 돈 버는데 집중한다. 저출산 예산에는 야당도 그리 반대하지 않는다. 저출산 딱지만 붙으면 국회의원들이 예산심사를 할 때 깐깐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가장 대표적인 게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예술교육활성화 예산 502억5000만원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저출산 해소에 도움을 주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문화예술을 교육한다는 개념 설정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다. 기자는 어디서도 문화예술을 따로 떼어내 배운 기억이 없다. 문화예술은 책, 공연, 영화 등 다양한 장르와 루트를 통해 인내를 동반한 연습·반복의 과정을 거쳐 습득하는 것이다. 

엉뚱한 저출산 예산은 보건복지부 국가시책 특별교부금(기초학력 향상지원) 199억2000만원이다. 기초학력을 높이는 것과 아이를 낳는 것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항목 자체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밖에 아동학생 피해자 보호 및 지원(222억원), 자살 예방 및 지역 정신보건 사업(33억1000만원), 지역 교통안전 환경개선(211억원)도 아이를 더 많이 낳게 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부처별로 저출산이란 꼬리표를 하나씩 붙여 예산을 따내려는 흔적도 보인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창업성공패키지 972억원, 고용노동부의 해외취업지원 571억원, 산학협력 기술기능인력 양성 338억6000만원,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양성 375억원 등이 그것이다.

성인지(性認知) 예산도 저출산처럼 침 발라놓은 사람이 임자다. 성인지 예산이란 국가재정을 투입한 사업이 성차별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시행되는지 평가하는 제도다. 예산이 각 성별에 미치는 영향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분석한 뒤 그 결과를 반영해 집행하는 예산을 가리킨다. 일·가정 양립 확산, 고용격차 해소, 여성폭력 근절을 명시한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따라 추진하는 사업도 일부 포함된다. 해마다 기획재정부는 여성가족부와 함께 상설협의체를 만들어 3·5·8월 각 부처로부터 제출 받은 성인지 예산을 검토한 뒤 국회에 제출한다. 

올해로 성인지 예산 도입 10년째를 맞지만 제도의 실효성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사업 목표나 평가지표가 성 평등과 관련이 없어도 끼워넣기 식으로 성인지 예산에 포함하기 때문이다. 

촘촘히 살펴보자. 경창철의 수사경찰전문교육 사업은 ▷금융범죄수사 ▷현장감식 기초 ▷디지털증거압수색 등 성 평등과 무관한 직무교육 위주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성인지 예산으로 분류됐다.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예방사업처럼 시대적 요구와 동떨어진 내용도 있다. 선진국가들은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는 추세이다. 지난해 사업 내역을 보면 대학생 생명사랑서포터즈 운영 포털사이트를 활용한 인공임신중절예방 관련 정보 제공 등으로 구성됐다. 

이밖에 법무부의 법질서 준수 및 법 교육 활동, 농림축산식품부의 한국농수산대학 운영, 중소벤처기업부의 전통시장 및 중소유통물류기반 조성, 용산 미군기지 공원 조성, 초·중·고 보건교사 대상 감염병 전문교육 등을 성인지 사업 예산으로 넣었다.

며칠 전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회에 나와 청와대 특활비를 삭감하지 말아달라고 하소연했다. 이현령비현령으로 끼워넣은 저출산·성인지 예산이 청와대 특활비와 과연 무엇이 다른가. 국민이 세금을 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혈세가 올바로 쓰이는지 감시하고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는 것도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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