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82] 속는 것도 부끄러운 일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82] 속는 것도 부끄러운 일
  • 김 형 욱 한국고전번역원
  • 승인 2018.11.23 11:22
  • 호수 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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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는 것도 부끄러운 일

어쩌다 속는 것은 

부끄러울 것 없지만,

속고도 속은 지 깨닫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時或見欺(시혹견기) 

不足爲恥(부족위치), 

旣有見欺而不覺見欺(기유견기이불각견기) 

是爲可恥(시위가치).

- 최한기(崔漢綺, 1803~1877), 『기측체의(氣測體義)』 신기통(神氣通) 권2 이통(耳通)「거짓말에 속느냐 마느냐(欺言聽否)」


증자(曾子)가 살인했다는 오보를 마을 사람들이 세 차례나 전하자 아들을 깊이 믿었던 증자의 어머니도 결국엔 두려워 베틀 북을 던지고 달아났다는 옛 고사나 2차 대전 당시 나치 선동가 괴벨스의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다음엔 의심받지만 되풀이하면 결국 모두 믿게 된다.’는 말로 보나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속게 되는 상황도 분명히 있다. 거짓인지 모르고 하였건 의도적으로 하였건 거짓말이 계속되면 진실은 알기 어려워지기 마련인데, 최한기 선생의 이 일갈(一喝)은 지나치게 각박해 보인다. 

그러나 “한 번 속고 두 번 속아도 평생토록 그 사람에게 속는 자가 얼마나 많길래 젊어서부터 탐관오리가 늙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부귀를 누리는가.[一次見欺 再次見欺 以至平生見欺於其人者何限 而自少年貪官汙吏迄于老死 安享富貴]”라던 선생의 탄식에서 이 일갈의 이유가 엿보인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류를 읽지 못하고 정체된 조선이 개화하기만을 바랐던 선생의 애정은 일갈과 탄식에만 그치지 않고 다음과 같은 근대적 개인상을 제시하는 데까지 미치고 있다. 

“상대의 말씨와 표정을 먼저 살피고 나서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며, 견해를 다 듣고도 이말 저말을 제대로 참조하여 낌새에 혹 묻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떠벌인 단서가 있거나 또는 지극히 작은 단서에 대해 짚이는 바가 있다면 반복해서 따져 물으라. 반드시 드러나는 것이 있을 것이다.[若能先察辭色 而後聽其言 聽罷言論 而參證彼此 事機或有涉於不求問而自衒之端 又或微末事端 有所揣摩 則反覆詰問 必有綻露矣]” 

국민들의 정치적 경제적 선택은 신속하고도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에 좌우된다. 그 정보에는 또한 진실과 선전·선동들이 대부분 뒤섞여 있으니 참으로 진위의 판단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나만의 판단 방법론이 없다면 선생이 제시한 길을 눈여겨 따라 보아도 좋을 것 같다.      

김 형 욱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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