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이무기
[디카시 산책]이무기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8.11.23 13:47
  • 호수 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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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

물비늘 한 겹 껴입을 동안 천 년이 흘러가고

다시 또 천 년 흘려보내면

이 푸른 기억 다 벗을 수 있을까

물 밖이 하늘이고 하늘 속에 물빛 흠뻑한데

천 년이 다시 하루 같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에 갔을 때 천 년 묵은 이무기가 한 마리 살고 있나 싶어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건 수십 년 된 나무가 호수 속으로 쓰러져 오랜 세월을 견디며 물이끼가 끼어 그렇게 보였던 것이다. 용으로 승천하지 못한 채 다시 또 천 년을 견뎌야 하는 이무기라면 얼마나 슬프고 힘들 것인가. 물 밖으로 날아올라 물빛보다 푸른 창공으로 승천해야 하는데 무슨 잘못이 많아 다시 천 년을 살아내야 한다면, 하루가 천 년 같다면 얼마나 기막힐 것인가. 나는 이무기 곁을 지나쳐 오며 나의 몇 십 년이 하루 같다고 생각했다.    

용이나 이무기나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이무기는 용이 되기 전 여러 해 묵은 구렁이를 말하기도 한다. 물속에서 천년을 지내면 용으로 변한 뒤 여의주를 물고 굉음과 함께 폭풍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라간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무기는 큰 잘못을 하여 용이 되지 못하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로 여겼는데 용이 긍정의 아이콘이었다면 이무기는 부정의 아이콘이었다. 부디 용이 되어 승천하기를.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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