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는 숲을 좋아하지 않는다!
노루는 숲을 좋아하지 않는다!
  • 오경아 작가 /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18.11.23 13:49
  • 호수 6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경아 작가 / 가든디자이너]

숲의 나무는 잎을 제공해

노루의 생존을 유지하게 하지만

살리신산 분비해 맛 없게 해

팽팽한 생태계 균형을 깨는 건

무분별한 개발과 흙의 유실

온대성 기후의 숲에는 상록과 낙엽의 수목이 공존한다. 사람의 손에 파괴되지 않은 숲이라면 우거진 수목으로 안은 어두컴컴하다. 이 숲을 걷노라면 키 낮은 식물들이 살아가기 얼마나 힘겨운지를 알게 된다. 촘촘하고 빼곡하게 하늘을 덮은 수목의 잎들은 햇볕을 가려 그 밑에서 자라야 할 키 작은 관목과 초본식물의 성장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숲은 최선을 다해 키를 키운 수목 덕분에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기가 어렵다. 큰 나무 밑에 양치류(고사리) 정도만 지면에서 겨우 자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힘겹게 살아가는 관목과 초본에게도 가끔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다. 산불이 나거나 혹은 인간에 의해 벌목이 일어나면 드디어 새싹을 틔울 절호의 기회를 맞는다. 

기회를 얻는 식물은 충분한 햇볕을 받으며 왕성하게 성장한다. 이때 이 먹을거리를 놓치지 않고 초식동물 노루와 같은 생명체도 함께 급격하게 수가 늘어난다. 양질의 풀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풀과 노루에게 과연 행복의 시작일까? 갑자기 늘어난 노루의 수는 풀의 성장 속도를 넘어선다. 하루 종일 먹어대는 엄청난 대식가의 급작스러운 등장에 풀들은 점점 생존이 힘겨워진다. 노루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지나친 증가는 다시 굶주림을 만들고, 뿐만 아니라 숲에서라면 보호되었을 상황이 광활한 초원에 그대로 노출돼 천적의 공격이 왕성해진다. 그래서 노루는 다시 숲을 선택한다. 부족한 먹을거리라 할지라도 숲에서라면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숲은 노루는 물론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게 결코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이 아니다. 모든 것을 베푸는 원천도 아니다. 모든 관계는 주고받고, 서로가 원인과 결과가 되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촘촘히 연결돼 있다. 때문에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체의 치열한 경쟁 탓에 그만큼 생존도 힘들다. 

노루는 이제 막 싹을 틔운 어린 자작나무, 너도밤나무의 잎을 좋아한다. 하지만 식물 입장에서 이런 잎을 초식동물이 먹으라고 호락호락 줄 리가 없다. 노루가 잎을 먹으면 주변에 자연스럽게 타액이 묻는다. 이 타액이 잎이나 가지에 닿으면 식물은 그때부터 바로 살리신산이라는 화학성분을 만들어낸다. 이 살리신산은 잎의 맛을 시고 떨떠름하게 정말 맛없게 만들어버려 노루의 식욕을 떨어뜨린다. 과학실험에 의하면 타액 없이 잎과 줄기가 잘려졌을 때는 식물들이 살리신산이 아니라 힐링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밝혀져 이 상황이 초식동물에 대한 방어임을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노루는 정말 맛없는 잎을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먹을 뿐이다. 그런데 생명체 간의 이 팽팽한 견제와 방어가 한 생명체가 증가하거나 멸종하는 것을 막고, 이게 더 나아가 숲이라는 생태계가 깨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된다.

생태학자 대부분은 숲이 지구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숲이 위험할 정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숲이 사라지는 이유는 산불과 같은 자연 현상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간의 농작지 개간 탓이다. 

전 세계적으로 농경지에서 유실되는 흙의 양은 백년에 2㎝로 알려져 있다. 2㎝라고 별개 아니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1㎜의 흙이 1㎢에서 사라지면 약 1000톤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지구의 표면을 보호하고 있는 흙이 사라지면 더 이상 나무가 자라지 않고, 지하수가 급격히 고갈되고, 암반이 노출돼 균열의 틈에서 화산 때와 같이 지구 내부에 보유돼 있는 가스가 분출돼 지구는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산소 양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은 지금도 간절하게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코앞에 닥친 위험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작은 노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작은 노력들이 큰 물줄기를 이루게 될 것이라 믿으면서…. 숲이 아니라도 좋다. 내가 사는 주거 공간 속에 식물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작은 정원이라도 갖는다면 우리 삶은 물론이고 분명 이 지구에 작은 변화가 찾아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