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빚은 갚고 삽시다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빚은 갚고 삽시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1.30 11:09
  • 호수 6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합격이네요.”

몇 해 전 지인과 술을 마시다 급하게 현금이 필요한 일이 생겨 빌리게 됐다. 함께 일하던 사이였기에 다음날 보자마자 돈을 돌려주자 대뜸 이렇게 말했다. 필자보다 사회경험이 훨씬 많았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간 이런 식으로 작은 돈을 빌려줬다고 한다. 많게는 10만원씩 빌려주기도 했는데 못 받은 경우도 허다하고 돈을 갚으라고 했다가 되레 욕을 먹은 일도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는 푼돈이라도 반드시 돌려주는 사람하고만 친하게 지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심 뜨끔했다. 필자 역시 가까운 사람에게 푼돈을 빌리고 차일피일 미루다 준 적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학생 때는 돈이 없어서라는 핑계를 댔지만 있어도 다른데 먼저 썼던 게 사실이다. 지인의 이야기에 한참동안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단 돈 백원이라도 빌리면 바로 갚는다. 

최근 연예계에는 일명 ‘빚투’가 쏟아지고 있다. 올해 세계를 달군 성폭력 피해자의 용기있는 고백인 ‘미투 운동’에서 차용한 단어로 유명 연예인의 가족 혹은 당사자에게 돈을 빌려줬다 십수년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뒤늦게 고백하고 나선 상황을 지칭한다. 종편의 한 낚시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된 래퍼 마이크로닷을 시작으로 ‘월드스타’ 비까지 가족이 진 빚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당사자인 연예인 입장에서 본다면 충분히 억울해 보인다. 자신이 어렸을 때 부모가 진 빚이어서 상황도 액수도 잘 모르는데 뒤늦게 언론플레이를 동원해 돈을 내놓으라 하니 황당할 수도 있다. 

다행히 비를 포함한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신속한 해명과 함께 당사자와 원만한 합의를 보겠다고 대중과 약속을 하면서 서서히 가라앉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닷을 비롯한 몇몇은 대처마저 미흡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수차례 방송에 나와 자신의 재력을 자랑했던 도끼라는 래퍼는 그의 어머니에게 1000만원을 빌려주고 못 받았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는 “1000만원은 한 달 밥값도 안 된다”면서 “와서 받아가라”는 적반하장격 해명을 하며 인성논란까지 이어졌다.  

가족의 빚을 모를 수는 있다. 다만 알게 됐다면 대중들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도덕적으로 접근해 해결하는 것이 옳다. 적어도 돈을 빌려주며 믿음을 보여준 사람들을 파렴치한으로 모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해선 안 된다. 성실히 빚을 갚는 모습으로 재기에 성공한 가수이자 방송인 이상민을 본받기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