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17) 슬로베니아
[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17) 슬로베니아
  • 문광수 여행가
  • 승인 2018.11.30 13:26
  • 호수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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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 극심한 트리글라브 산악루트는 아찔하지만 감동적

류블랴나 구시가지 촘촘히 채운 붉은 벽돌집들은 푸른 숲과 조화

마주치는 집들마다 동화속 집 연상… 블레드 호수 풍광도 매력 만점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 전경. 블레드 호수는 율리안 알프스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 형성된 호수로 슬로베니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 포인트다. 호수 중간의 섬에는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이 세워져 있다.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 전경. 블레드 호수는 율리안 알프스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 형성된 호수로 슬로베니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 포인트다. 호수 중간의 섬에는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이 세워져 있다.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에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까지 거리는 125km. 오토바이로 2시간이면 충분하다. 정오 12시 류블랴나 시티호텔 앞에서 한국인 블로그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돼 있어, 시간을 맞추기 위해 뒤를 살필 여유도 없이 달렸다. 

가까이 왔는데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이 공사로 차량 진입 금지구역이다. 우회하는 길을 몰라 망설이다가 모른 체하고 그냥 지나갔다. 뒤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12시 정각, 약속장소에 간신히 도착하니 친구 두 명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블로그를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눈 지라 십년지기같이 반가웠다.

화창한 날씨에 류블랴나 도심의 거리는 활기가 넘친다. 한 무리의 젊은이가 짐을 잔뜩 실은 오토바이 번호판을 보고 “서울에서 오셨군요”하며 몰려왔다. LA에 유학 중인 한국인 대학원생과 약혼자, 학교 친구들이 약혼식을 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그들은 유라시아 대륙횡단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젊은이들에 둘러싸여 기념촬영을 하고 헤어졌다. 

류블랴나 프레셰렌 광장의 가을 햇볕은 따뜻하고 상쾌하다. 하늘에서 비를 뿌리는 ​분수도 꽤 인상적이다. 사람으로 가득 채운 프라하의 시계탑광장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낭만적이라고 할까. 한가롭게 한나절 계단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늙은이가 보이고,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인공비를 맞으며 깔깔거리고 빙글빙글 돌며 지나간다. 트리 브릿지를 지나 시청광장에서 왼쪽 좁은 골목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 오르면 류블랴나 성이다. 이날 만난 친구 한 명이 류블랴나 성 노천극장에서 영화를 본다고 해서 의아했다. 그 성에서 이날은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성에서 내려다뵈는 류블랴나의 구시가지는 뾰족한 지붕을 가진 중세시대 붉은 벽돌집이 촘촘히 들어서 푸른 숲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바강을 경계로 형성된 신시가지는 바둑판처럼 보이고 도로가 멀리 산으로 이어진다. 수도라고 하기엔 아담하고 매력이 넘치는 도시이다. 

축제가 벌어지는 거리는 흥겹다. 거리의 악사들과 피에로의 출현에 어린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빛난다. 광장의 춤추는 사람들은 탱고에서 차차차, 블루스로 바꿔가며 어깨를 들썩인다. 이곳 축제의 거리는 야단스럽지 않으면서도 흥겹고 거리 문화가 온전하다. 

친구와 슬로베니아의 유명한 카바이(Kabaj) 와인에 스테이크 요리로 저녁 식사를 하고 약간 취기를 느끼며 거리로 나왔다. 사바강 변 카페에 류블랴나의 한국 교민들이 다 모였다. 류블랴나 관광청장 부부는 우리를 환대해 주었다. 그리고 “위하여”도 외쳤다. 유라시아횡단 여행 중 이날같이 많이 웃어보긴 처음이다. 여행 중 최고의 날이었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전망대에서 바라본 류블랴나 성(중앙 언덕 위 건물)의 모습. 아래쪽으로 오래된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전망대에서 바라본 류블랴나 성(중앙 언덕 위 건물)의 모습. 아래쪽으로 오래된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율리안 알프스의 트리글라브산

매일 캠프촌에서 지내다가 지인이 마련해 준 프레셰렌 광장 옆에 있는 특급호텔에서 묵고 나오니 기분이 상쾌하다. 류블랴나에 사는 오토바이 전문 가이드가 추천한 율리안 알프스(이탈리아 북부에서 슬로베니아까지의 산맥)의 트리글라브 산악루트를 내비게이션에 저장했다. 

마주치는 집집마다 창틀과 뜰에 꽃이 없는 집이 없다. 동화 속에 나오는 요정들의 집 같다. 지도에도 잘 나오지 않는 길은 현지인 아니면 갈 수 없는 7부 능선에 만들어진 꾸불꾸불 산길이다. 가끔 오토바이 애호가들이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것 외에 차량은 거의 다니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시골풍경이다. 사과향기 그윽한 마을을 그냥 지날 수 없어서 사진도 찍을 겸 큰 사과나무 그늘에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동네 길가에 있는 사과나무가 어찌나 큰지 우리나라 정자나무 같다. 사과도 많이 열렸다. 빨갛게 달린 사과가 풍성한 가을을 알린다. 

율리안 알프스의 눈동자라 불리는 블레드 호수는 슬로베니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 포인트다. 잔디밭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비키니 차림의 사람들이 즐비하게 누워 있다. 

스키 마을 크란스카 고라(Kranjska Gora)를 지나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하는 트리글라브 산은 쉽지 않았다. 손에 쥐가 날 정도였다. 기온이 뚝 떨어지고 손이 시려 장갑을 하나 더 끼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풍경이 지나간다. 그래도 오토바이를 세울 수가 없다. 경사가 엄청나게 심하고 굽은 길은 조각돌로 시공을 해서 미끄러지지 않을까 겁이 날 정도다. 설악산의 한계령(1000m)과 비슷한데, 경사가 더 심하고 커브가 급하다. 루트의 정상(1680m)에 오르니 바이크들은 저마다 풍광에 취해 있다. 이날 산악루트 질주는 감동적이었다. 서둘러 내려온 2부 능선에 기다렸다는 듯이 아담한 캠프장이 있어 참 반가웠다. 캠프장에서 회색 바위산 봉우리를 바라보며 와인 한 잔을 마시니 비로소 안도감이 느껴진다.    

글·사진=문광수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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