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남·북한 문화재 자유왕래 언제쯤 가능할까
[백세시대 / 세상읽기] 남·북한 문화재 자유왕래 언제쯤 가능할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12.07 13:20
  • 호수 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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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는 인민이 주체가 된 정치사상이다. 공평하게 노동하고 공평하게 배분하자는 원칙을 표방하며 특정계층의 부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공산당은 전제왕정의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까. 그들의 이념 논리대로라면 왕이 백성의 생명과 재산권을 소유한 채 마음대로 휘두르는 체제 하에서 만들어진 문화재를 소중히 관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때는 중국의 모택동이 문화혁명 때 했던 것처럼 북한이 고려·조선시대의 문화유적을 훼손하고 없애버렸을 거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최근 독일 베를린자유대 서원연구팀이 북한을 방문해 서원들이 잘 보존돼 있는지를 돌아보았다.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학문연구와 선현제향을 위해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운영기구이다. 1543년(중종 38)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말 학자 안향을 배향하고 유생을 가르치기 위해 경상도 순흥에 세운 백운동서원이 효시이다.

서원연구팀이 맨 먼저 찾아간 곳은 개성 선죽동에 있는 숭양서원이다. 숭양서원은 2013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573년(선조 6)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고 서경덕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정몽주의 집터에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외삼문을 들어서면 강당이 나온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이곳에서 학문을 연마했다. 강당 좌우에 제자들의 숙식처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내삼문을 통해 문충당이라는 사당으로 통한다. 

정몽주의 흔적도 남아 있다. 정몽주가 입궐하려고 말을 탈 때 디뎠다고 하는 돌받침대와 귀가해 말에서 내릴 때 디뎠다는 돌이 서원 문 앞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서원 주변에는 여러 개의 비석이 서 있다. 

연구팀은 황해도 벽성군 소현서원도 들렀다. 평양에서 140km 떨어진 곳이다. 사리원과 신천, 재령을 거쳐 가는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4시간 이상 걸렸다고 한다. 북한 국보 문화유물로 지정된 소현서원은 율곡 이이가 낙향하여 후진을 양성하고 학문을 연구하던 자리에 들어섰다. 경치가 뛰어난 석담구곡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다섯 번째 굽이 ‘은병’ 옆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 된 것을 1604년(선조 38)에 복원했다.

경내 건물은 사당·강당·재실·전사청·창고 등이다. 네모난 담장 안 앞뒤로 강당과 사당이 있다. 담장 바깥에는 청계당·요금정 등 여러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이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사당 앞 ‘천조각’이라는 소규모 비각 안에 추사 김정희가 쓴 비문이 있다. 서원을 돌아본 연구팀은 “성리학자로 안빈낙도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하는 국가 경영을 고민하던 학자, 정치가로서 율곡의 면모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북이 문화유적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베를린자유대의 서원 탐방을 통해 처음 접하게 돼 반가웠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예산 12억원을 들여 ‘대고려전’을 내년 3월까지 전시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고려 유물이 한자리에 모인다. 미국·영국·이탈리아·일본 등 총 45개 기관에서 고려 문화재 450여점을 확보해 소개한다.

볼만한 문화재는 합천 해인사에서 이운한 보물 제999호 건칠희랑대사좌상(희랑대사좌상)이다. 국내에 전해지는 유일한 목조 승려 조각상으로 고려 930년경에 제작된 이래 처음으로 해인사 밖을 나섰다. 희랑대사는 태조 왕건의 정신적 지주로 후삼국시대 수세에 몰린 왕건을 도왔던 인물이다. 재밌는 점은 박물관 측이 희랑대사 옆자리를 공석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다. 당초 북에 있는 태조 왕건상을 대여해 희랑대사좌상과 나란히 전시하려고 지난해부터 통일부를 통해 북한 고려 문화재 17점의 대여를 추진했으나 이 시간까지 별다른 대답을 받지 못했다. 박물관 측은 “개막 후라도 왕건상이 온다면 전시할 생각으로 자리를 마련해놓은 것”이라고 했다. 

정전협정, 김정은 서울 답방 얘기가 나오는 등 한반도 정세가 새로운 전기를 맞은 요즘 남북의 문화재가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는 날도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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