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디지털플라자 ‘키스해링’ 전, 단순한 그림으로 미술거장이 된 길거리 낙서꾼
동대문디지털플라자 ‘키스해링’ 전, 단순한 그림으로 미술거장이 된 길거리 낙서꾼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2.07 14:14
  • 호수 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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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눈·코·입 없는 단색 캐릭터로 유명…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팝아트 추구

32세로 타계할 때까지의 대표작 ‘지하철 드로잉’, ‘피플’ 등 170여점 선봬

빛나는 아기(위쪽)를 두고 임산부로 추정되는 여인들이 경쾌한 춤을 추는 모습을 담은 1983년 작 ‘무제’.
빛나는 아기(위쪽)를 두고 임산부로 추정되는 여인들이 경쾌한 춤을 추는 모습을 담은 1983년 작 ‘무제’.

눈·코·입 없이 두꺼운 외곽선으로 익살스런 포즈를 그린 후 빨강·노랑·파랑 등 단색으로 몸을 채운 캐릭터. 미국 팝아티스트 키스 해링의 이름은 몰라도 그가 남긴 이 캐릭터 그림은 길거리, 혹은 다양한 디자인상품을 통해 누구나 접해봤을 것이다. 어려운 미술을 쉽게 풀어낸 팝 아트(대중문화적 시각이미지를 적극 수용한 미술)의 총아이자 현재까지 사랑받는 키스 해링. 이 ‘악동 예술가’를 소개하는 전시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고 있다.

내년 3월 17일까지 진행되는 ‘키스 해링, 모두를 위한 예술을 꿈꾸다’ 전에서는 1980년대 키스 해링의 초기 작품부터 에이즈 진단을 받고 죽기 직전까지 약 10년간 짧지만 불꽃같았던 작업의 결과물들 중 175점을 소개한다. 드로잉, 조각, 앨범아트와 포스터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방대한 작업을 펼친 그의 작품 세계를 8개 섹션으로 나눠 선보인다.

32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키스 해링의 그림은 매우 간결한 선으로 이뤄졌다. 그러면서도 난해하지 않다. 누구나 한 번만 봐도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귀엽고 통통 튀면서도 특이하다. 거의 낙서에 가까워 미술전시장보다는 지하철 벽이나 디자인 소품에 더욱 잘 어울린다. 겉으로 보기엔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작품 세계에는 ‘소수가 아닌 모두를 위한 예술’이라는 심오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번 전시는 키스 해링의 철학을 엿볼 수 있도록 작가의 작업 초기부터 타계할 때까지의 궤적을 따라간다. 맨 먼저 눈길을 끄는 작품은 초기 대표작 ‘지하철 드로잉’이다. 1980년대 미국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키스 해링은 일부 예술애호가뿐만이 아닌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예술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키스 해링은 지하철역에 있는 검은 종이의 광고판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분필로 그림을 그렸다. 경찰과 역무원 눈을 피해 지하철 역 광고판에 하루에도 수십 개씩 그림을 그렸다. 분필로 그린 그의 단순한 그림은 친숙하면서도 생동감 있어 많은 시민에게 관심을 얻게 되었고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어두운 방에 설치된 ‘블루 프린트 드로잉’은 ‘지하철 드로잉’처럼 독특한 시도의 작품으로 키스 해링이 사망하기 한 달 전에 발표되었다. 다른 작품과는 달리 그의 초기 작품의 특징인 순수 시각적인 요소들로 구성됐다. 상징들과 장면들을 합쳐 우리 사회에 어두운 현실을 만화책의 한 장면처럼 묘사했다.

해링은 많은 뮤지션들과 협업했는데, 몇몇 작업은 아예 그들의 음악과 떨어질 수 없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는 데이비드 보위의 1983년 앨범 ‘위드아웃 유’다. 포옹하고 있는 두 사람이 밝게 빛나는 형태로 그려진 이 간결한 그림은 노래가 전하고자 하는 사랑과 연결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키스 해링의 작품은 대부분 상징적인 몇 개의 아이콘으로 채워진다. 특히 그가 사랑한 것은 ‘아기’였다. 그는 사망하기 이틀 전까지도 ‘빛나는 아기’를 그렸다. 아기는 몸에서 빛줄기를 뿜어내며 에너지를 갖고 쉼 없이 기어 다닌다. 해링은 순수하고 에너지 가득한 아기를 닮고 싶어했고 실제로도 그러한 삶을 추구했다. 그가 그린 빛나는 아기는 곧 키스 해링 자신이기도 했다. 아기뿐 아니라 웃는 얼굴, 하트, 천사, 짖는 개, 돌고래 등 해링은 여러 가지 상징을 만들어냈다. 이는 오늘날 사용되는 이모티콘의 시초가 됐다. 

모슬린에 아크릴과 오일물감의 현란한 색채로 꾸며낸, 가로세로 3m가 넘는 대작 '피플'
모슬린에 아크릴과 오일물감의 현란한 색채로 꾸며낸, 가로세로 3m가 넘는 대작 '피플'

이들 중 인간 군상을 한 데 엉켜 놓아 ‘피플’로도 불리는 ‘무제’(1985)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모슬린(평직으로 직조한 면직물)에 아크릴과 오일물감의 현란한 색채로 꾸며낸, 가로세로 3m가 넘는 대작이다. 밑그림 없이 즉흥적으로 그렸는데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는지 다투고 있는지, 보는 사람의 입맛에 따라 다른 열린 해석으로 유명하다. 

이와 함께 키스 해링의 캐릭터 사전 같은 석판화 ‘빨강과 파랑의 이야기’(1989) 시리즈와 알록달록한 24개의 이미지로 구성한 실크스크린 ‘회상’(1989) 등. 여기에 평면 캐릭터를 입체로 세우고 알루미늄 도료로 산뜻하게 색을 입힌 조각 ‘곡예사’(1986). 고대 기호로 원시에너지를 가득 채운 ‘피라미드’(1989), 이집트 파라오 관을 딴 콘크리트 모형에 미국 원주민과 토착민 부족의 상징을 넣은 ‘토템’(1989) 등도 눈여겨 볼만하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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