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85] 무당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85] 무당
  • 최 두 헌 한국고전번역원
  • 승인 2018.12.14 15:04
  • 호수 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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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방울 달린 왕대 흔들어 신령을 불러들이고

입으로는 간절하게 길흉화복을 말하네

흉한 일 좋은 일을 저들이 어찌 맘대로 할 수 있으랴

요사스러운 말 흩뿌려 백성을 홀릴 뿐

苦竹叢鈴忽迓神 (고죽총령홀아신)

丁寧禍福口中陳 (정녕화복구중진)

避凶趨吉渠何得 (피흉추길거하득)

邪說紛紛惑庶民 (사설분분혹서민)

- 정조(正祖, 1752~1800), 『홍재전서(弘齋全書)』2권, 「무(巫)」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正祖)가 스무 살 무렵, 아직 세손이던 시절에 쓴 시이다. 무당이 굿을 하는 모습을 보고 불편한 마음이 들었던 모양이다. “무당이 무슨 수로 백성들의 고통을 해소하고 평안히 살게 할 수 있는가. 백성을 그럴싸한 말로 속여 자신들의 배를 채우려는 수작일 뿐”이라고 정조는 생각했다. 또 시에서는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무당이 불러들인 신에게 정말 그런 힘이 있다면 임금도 신하도 나라도 조정도 필요 없을 것이다. 신이 백성의 재앙을 없애 주고 안락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펴 주면 되니까. 하지만 존재 여부조차 불분명한 신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다. 기껏해야 일시적인 위안을 줄 뿐이고, 그마저도 신이 아니라 무당이 주는 것이다. 사람의 일은 결국 사람이 해결할 수밖에 없다. 사람의 일을 신에게 의뢰하고 보답을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거나 사기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왕이 무당을 겸직하던 먼 옛날 신정(神政) 시대에도, 임금이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올리며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던 조선 시대에도, 실제로 이 세상을 만들고 변화시킨 것은 사람이었다. 평화롭고 풍족한 나라도 지옥 같은 고난의 삶도 모두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신에게 복을 기원하는 습속을 버리지 못했다. 어째서일까? 

그건 아마도 사람이 사람의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만큼 풍요롭고 평안한 삶이 보장되는 세상이라면 사람들은 무당을 찾아가 신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조르기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쪽을 택할 것이다. (중략)

신은 잘못이 없다. 세상을 살기 좋게 만드는 것은 신의 책임이 아니라 사람의 책임이다. 신을 빙자해 사기를 치거나 추악한 짓을 저지르는 것은 신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의 잘못이다. 더 큰 잘못은 삶이 괴롭고 앞날이 불안한 백성이 하소연할 데라곤 신밖에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이 성실과 정직의 가치를 믿지 못하게 하여 무당이 활개 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무당을 비난하기보다는 신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는 세상, 그래서 무당이 할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우리는 ‘정치’라고 부른다. 그것은 다시 한 번 우리들, ‘사람’의 일이다.      

    최 두 헌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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