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초고속통신 시대의 뜸들이기 소통법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초고속통신 시대의 뜸들이기 소통법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8.12.14 15:13
  • 호수 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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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필로소퍼’(New Philospher, 바다출판사)라는 올해 초 창간한 철학 계간지를 읽었다. 프랑스에서 먼저 발행된 철학 잡지로 매호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고 주제 전체를 관통하는 통찰력 넘치는 글들을 싣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철학을 담은 에세이만 모아서 소개하는 잡지는 생소했기에 어떤 글이 실려 있을지 궁금했다. ‘커뮤니케이션, 너무 많은 접속의 시대’를 주제로 발간된 한국판 창간호는 번역글은 다소 난해했지만 우리나라 필자들이 쓴 글은 그나마 읽을 만했다.

특히 세계적인 IT 전문가이자 유명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카가 쓴 ‘너무 많은 소통’,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의 ‘우리는 결국 만나지 못했다’가 인상적이었다. 두 글은 공통적으로 ‘카카오톡’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환경 속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하는 의사소통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어르신들이 연애를 하던 시절만 해도 마을마다 한두 대 있을까 말까한 전화나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뉴스도 대부분 종이로 확인했다. 그러다보니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의사소통 과정이 느렸다. 요즘은 연인에게 보낼 편지에 적을 문구를 생각하느라 오랜 시간 심사숙고하는 일은 없어졌다. 답장이 올 때까지 길고 긴 시간을 기다리며 연정을 키워가던 마음도 사라졌다. 방금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의 ‘1’이 언제 사라질지 초조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두 글은 공통적으로 ‘정보 전달이 빨라진 것은 축복이지만 고민할 시간까지 줄어든 것은 불행’이라 지적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당신을 오해해 편지에 ‘너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적어보냈다고 하자. 이를 본 당신은 화가 날 것이다. 하지만 곧 상대방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를 추측하고 고민하다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나서야 펜을 들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을 차분하게 전달해 오해를 풀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 카카오톡은 다르다. 같은 말을 듣게 되면 금세 얼굴이 달아올라 고민도 없이 ‘내가 왜’라고 답장을 보내고 자칫하면 되돌릴 수 없는 감정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의 메시지를 읽고 심사숙고할 수도 없다. ‘1’이 사라졌는데 답이 오지 않는다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만 너무 빠른 대답을 요구하는 현재의 의사소통 방식에는 변화가 필요하다. 상대의 말에 화가 나더라도 5분 정도는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여유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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