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19) 스위스 체르마트
[은발의 라이더 문광수, 시베리아 넘다 ] (19) 스위스 체르마트
  • 문광수 여행가
  • 승인 2018.12.14 15:29
  • 호수 6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악도로 ‘그림젤패스’를 달려 정상에서 본 두 호수 경이로워

마터호른 바라보며 산악열차 타고 올라가 트레킹 하는 것도 재미

해발 2000m 고지에서도 호밀 경작하는 스위스 국민의 생명력 대단

산 허리를 따라 꾸불꾸불 오르는 ‘그림젤패스’(Grimsel Pass)가 보인다. 체르마트에서 인터라켄을 향해 알프스를 넘는 이 길은 바이크들이 동경하는 코스 중의 하나다.
산 허리를 따라 꾸불꾸불 오르는 ‘그림젤패스’(Grimsel Pass)가 보인다. 체르마트에서 인터라켄을 향해 알프스를 넘는 이 길은 바이크들이 동경하는 코스 중의 하나다.

알프스의 고봉 마터호른(4478m) 산기슭에 자리한 산악기지 체르마트(Zermatt)역에 내리면 한글로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을 보게 된다. 그리고 마을에 들어서면 마터호른을 370회나 등산한 전설적인 산악인 울리히 인더비넨(Ulrich Inderbinen)의 동상을 보게 된다. 

체르마트에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다. 작은 산골 휴양지로 차량통행이 금지돼 있다. 고유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온 오래되고 좁은 골목길 옆으로 수백 년을 견뎌 온 목조건물들이 석탄처럼 검게 빛나고 있다. 마을이 온통 역사박물관처럼 느껴진다. 

마터호른 박물관은 1865년 마터호른 최초 등반 당시의 장비와 등산의 역사, 이 마을의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마을의 경작지는 산림한계선인 해발 2000m의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도 호밀을 경작하는 스위스 국민의 끈질긴 생존력을 엿볼 수 있다. 

체르마트는 세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산악열차가 연결된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 지역은 360km가 넘는 스키 슬로프로 유럽에서 가장 넓고, 높은 곳에 있는 여름 스키 지역이다. 여름이면 수많은 국가대표 스키팀이 이곳에서 훈련한다. 

그리고 몽블랑(Mont Blanc)에서 시작하여 체르마트까지 이어진 호이테 루트(Haute Route)는 400km가 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레킹 코스이다. 좀 더 특별한 경험을 원한다면 숙련된 산악 가이드가 동행하는 패러글라이딩, 헬리 스키를 도전해볼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마터호른은 초콜릿 토블론이나 영화사 파라마운트의 로고에서 많이 봐왔다. 마터호른을 즐기려면 마터호른 글래시어 파라다이스에서 스키를 타보는 것도 좋지만 간단히 즐기는 방법은 산악열차를 타는 것이다. 여기서 여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몇 개의 코스를 선택해서 2~3시간 걸어보는 것을 권한다. 호수에 비치는 광활한 알프스 산악지역의 긴 호흡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산악지역의 날씨는 언제 변할지 모른다. 체르마트에선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데도 스키어들은 스키를 메고 리프트로 향한다. 마터호른은 쉽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구름을 원망할 필요는 없다.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체르마트에서 마터호른을 상상하며 떠나는 것도​ 좋다. 스위스가 자랑하는 그린델발트로 가는 빨간 관광열차는 기적 소리를 울리며 론강을 끼고 실같이 굽어 돌아 흘러간다​. 

체르마트에서 한 나절을 달려 산악도로인 그림젤패스로 향한다. 스위스의 전형적인 산허리를 감아 도는 실같이 가늘고 감미로운 이 길은 오토바이 전용로같이 느껴진다. 푸른 초지 위에 하얀 집, 빨간 지붕, 그리고 약속이나 한 듯 창틀에 놓은 꽃장식, 이것이 스위스이다. 

오후로 갈수록 빗방울이 굵어지고 날씨가 추워진다. 그림젤패스를 넘기 위해 산 아래 도착했을 때 저쪽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비바람이 거세다”, “앞이 보이지 않아 위험하다”, “너무 춥다”는 등의 정보를 준다. 

이를 받아들여 일단 후퇴하기로 했다. 다시 20km 후방의 캠프를 찾아 하룻밤 쉬면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체르마트의 오래된 집들. 차량통행이 금지된 이곳은 200년 이상 된 목조건물들이 검게 빛나고 있다.
체르마트의 오래된 집들. 차량통행이 금지된 이곳은 200년 이상 된 목조건물들이 검게 빛나고 있다.

다행히 다음 날 아침 날씨가 화창하게 갰다. 하늘은 파랗다. 들꽃으로 장식된 깊은 계곡은 바람에 향기를 날린다. 전날 무시무시하게 보였던 그림젤패스는 굽이굽이 용트림하며 급하게 올라간다. 안개 속에 묻혀 보이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이날 보니 길은 넓고 좋았다. 안전을 고려해 커브도 넓게 해서 오히려 해발 1680m 슬로베니아의 트리글라브 구비보다 훨씬 쉬웠다. 

역시 2000m 이상 고지에 오르니 기온이 뚝 떨어진다. 정상에는 2164m란 표지판이 보이고 많은 오토바이족들이 모여 서로 정보교환을 하며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분주하다. 날씨가 추워서 일까, 정상에 있는 카페는 만원이다. 뜨거운 커피와 파이 한 조각으로 점심을 때운다.

정상에는 그림젤호(湖)의 파란 호수와 한 구비 돌아 레터리흐스보덴제의 연녹색 호수가 있다. 가까이 있는 두 호수의 색깔이 이토록 다른 이유가 궁금하다. 파란 호수는 하늘을 담고 연녹색 호수는 주위 산을 담아서 표현하는 것일까. 의문을 품은 채 신비를 사진에 담아 떠나는 것이 여행자이다. 그림 젤 패스를 넘어 인터라켄으로 가는 길도 좋고 날씨도 아주 좋았다. 

인터라켄에서 25년 전에 경험한 여행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알프스의 상징처럼 보이는 파란 초지에 샬레 풍의 뾰족하고 빨간 집들 사이로 난 들길에는 야생화가 피어 있다. 인터라켄의 도시보다 이런 시골 마을로 들어가서 하루 이틀 묵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000m 아래로 걷는 트레킹은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융프라우 지역에 70여 개의 트레킹 코스가 있다. 각자 능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해서 하루쯤 들길을 걸으며 심호흡을 하고, 알프스의 계곡에서 메아리를 불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글·사진=문광수 여행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