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상형문자
[디카시 산책] 상형문자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8.12.14 15:31
  • 호수 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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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형문자

모랫벌에 방게가 새긴 저 글자들

고대 페니키아인들 와서 영어로 해독하고

은나라 사신도 지나가다 한자로 필사하고

나는 오늘 ‘보고 싶다’고 읽는다


바닷가에 무슨 기호인지 모를 문양들이 길게 쓰여져 있다. 생명체라고는 그 무엇도 찾아볼 수 없는데 대체 무엇이 저런 기호를 새겨놓았을까. 페니키아인들이 처음 만들어 썼다는 알파벳 같기도 하고, 은나라에서 처음 만들었다는 한자의 전형 갑골문자 같기도 한데 뭐라 쓰여져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나는 그냥 ‘보고 싶다’고 해독한다. 그것이 오독이라 할지라도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사실 저 문양들은 모랫벌에 살고 있는 방게들이 모래 속에 들어있는 미네랄을 섭취하고 뱉어놓은 모래 알맹이들이다. 그렇게 방게가 식사를 하고 지나간 자리에 저런 아름다운 문양들이 생겨난 것이다. 얼마나 동글동글 똑 같은 크기인지 놀라울 뿐이다. 정밀한 기계로 무게를 달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하찮게 여기는 작은 생명체들도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찌 인간만이 만물의 영장이라 하여 인간 중심으로만 자연을 지배할 것인가.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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