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수무책
어떨 땐 나도 모르는 우연이
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인연을 가장한 우연이든
우연을 빙자한 운명이든
온전히 내 몫으로 끌고 가야 할 때가 있다
바닷가에서 홀로 한 남자가 태양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우연히도 남자의 그림자는 플라스틱 부표에 가 닿았다. 부표는 물 위에 있을 때는 한없이 가볍지만 일단 물 밖을 벗어나면 한낱 무거운 짐일 뿐이다. 남자의 뒷모습은 자신도 모르는 무거운 짐을 끌고 가는 것처럼 보인다. 멀리 망망대해로부터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흰 칼날처럼 서늘하게 다가온다. 하늘은 텅 비어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다. 오직 한 남자와 발목을 잡고 있는 부표만이 보는 사람의 시선마저 무겁게 만든다.
우리는 인연을 가장한 우연에 속수무책이다. 우연을 빙자해 일어나는 운명에도 속수무책 어떠한 손을 쓸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인생은 계속되고 피할 수 없다면 맞서야 한다. 그것이 인연이든, 우연이든, 운명이든 내 몫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돌파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이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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