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독자기고] “우리 할아버지는 멋쟁이 요리사”
[백세시대 / 독자기고] “우리 할아버지는 멋쟁이 요리사”
  • 신진영 대한노인회 충북연합회 교육자원팀장
  • 승인 2018.12.28 11:20
  • 호수 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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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영 대한노인회 충북연합회 교육자원팀장]

평균 연령이 70대를 훌쩍 넘긴 남성 어르신들이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하얀 ‘토그 브란슈’(요리사들이 쓰는 길쭉한 모자)를 쓴 채 도마 위에 재료를 썰고 있다. 칼질은 조금 서툴지만 표정은 진지하다. 이어 각종 양념을 첨가해 요리를 완성시켜 나간다. 접시에 담겨진 요리는 투박하지만 맛은 일품이다. 십수 년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런 풍경을 최근 충북도내 경로당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요섹남’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라는 뜻으로 남성들의 주방 출입을 우아하게 표현한 것이다. 요리는 더 이상 여성의 전유물이 아닌, 남성들의 필수적인 덕목이 돼가고 있고 이런 분위기는 어르신 사회까지 흘러들어갔다.

대한노인회 충북연합회(회장 김광홍)는 요리를 하려는 어르신들의 욕구를 반영해 지난해 남성어르신 요리교실은 운영했다. 음식 초보인 남성 어르신들이 손쉽게 해 드실 수 있는 메뉴를 선정해 전문 강사의 도움을 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진천군지회(회장 박승구) 덕산면분회와 광혜원분회에서 20여명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어르신들은 난생 처음 경로당에 모여 요리 강사의 지도 아래 밥도 짓고, 반찬도 만들어 동네 주민들에게 식사 대접을 했다. 

처음이라 실수도 잦았고 속도도 느렸지만 단 한명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여했다. 참여한 남성 어르신들은 일찍 요리를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예전 사회 분위기 때문에 주저하게 된 것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리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광혜원면의 류무열(78) 어르신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자는 부엌 출입을 하면 안 된다는 관습 때문에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울 기회가 적었는데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내 손으로 직접 요리를 해서 아내와 손주들에게 먹일 수 있게 돼 기쁩니다.”

요리의 또 다른 장점은 자존감 향상과 정서적 안정이다. 한국요리심리치료협회 권명숙 회장은 “남성어르신의 경우 평소에 잘 하지 않는 요리를 하면서 성취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를 통한 정서적 안정도 찾을 수 있어 요리를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홀로 살다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가 사회문제로 드러나고 있는데, 친구도 사귈 수 있고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남성요리교실 프로그램은 경로당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김광홍 충북연합회장의 말처럼 보다 많은 경로당에 요리 프로그램이 도입해 멋쟁이 할아버지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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