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신년특집] 세계 지도자들 나이별 통치술 집중 탐구
[백세시대 / 신년특집] 세계 지도자들 나이별 통치술 집중 탐구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8.12.28 13:14
  • 호수 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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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젊은 리더, 90대 노인 리더… 누가 더 잘하나

나이에 따른 지도자들의 국정 운영 역량은 어떨까. 경륜과 지혜가 높다고 해서 통치를 잘 하고 정치 경력이 짧아서, 인생 경험이 적어서 그렇지 못하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이들의 정치적 역량은 개인의 성품과 사상, 협치와 소통, 리더십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있는 반면 나이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지지율로 나타난다.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의 나이는 30~90대로 환갑(60년)의 시차가 존재한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는 93세로 세계 최고령 지도자이다. 마하티르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이는 튀니지의 베지 카이드 에셉시 대통령으로 92세이다. 그에 반해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오스트리아 제바스티안 쿠르츠는 나이가 각각 40세, 31세로 젊은 기수다. 마크롱은 지난해 5월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역대 프랑스 대통령 가운데 최연소라는 기록을 썼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1981년부터 2003년까지 22년간 말레이시아를 철권통치했던 올드보이였다. 그가 올해 5월 치러진 총선에서 승리해 15년 만에 총리직에 복귀했다. 1925년 영국 식민 치하의 말레이 반도에서 태어나 의사가 된 그는 1957년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마하티르 총리 “한국은 우리의 모델”

마하티르는 1969년 툰쿠 압둘 라만 당시 총리가 중국계의 경제적 지배에 짓눌린 말레이계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비난하다가 한때 정계에서 축출됐다가 1972년 툰쿠 총리의 사임으로 복귀했다. 이후 장관과 부총리를 역임하며 탄탄한 정치적 입지를 구축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한국에 대해서 우호적이다. 그는 지난 11월 14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원고 없이 즉석에서 한 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우리들의 모델’이다. 한국은 한때 아시아의 은둔국가로 평가 받았으나 이제는 아시아 경제 발전에서 선두를 달리는 첨단국가로 성장했다. 특히 산업기술, ICT,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선진국가로서 우뚝 섰다. 과거에는 말레이시아보다 못하는 나라였는데 최첨단 국가가 됐다. 한국은 또 대외관계에서도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북한이 자세를 바꾼 것을 알아채고 그 진정성을 평가해 북한과 좋은 관계를 맺고 우정을 쌓고 있다. 북한이 하룻밤 사이에 군사역량을 모두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이제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도발행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말레이시아는 한국에 수많은 학생들을 유학 보내 한국 성장의 비결을 배우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말레이시아도 선진국화를 달성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는 그가 집권한 이후 현재까지는 이렇다 할 반정부 시위나 데모가 벌어지지 않고 있다. 현지 언론은 평생 정치판에서 키워온 경륜과 지혜를 무시할 수 없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는 체력적으로도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 9월, 유엔총회 참석 차 미국을 방문해서 강연과 대담, 토론회로 이어지는 바쁜 일정을 열정적으로 소화해냈다. AP통신은 “마하티르 총리가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1시간 20분 가량 진행된 연설과 대담, 질의·응답 내내 청중을 사로잡았다”고 보도했다. 

아프리카 최고령 카메룬 대통령

아프리카 최고령 지도자인 폴 비야(85) 카메룬 대통령에 대한 지도력 평가는 현재로선 긍정도 부정도 아니다. 그는 지난 10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71.3%의 득표율로 당선돼 7연임에 성공했다. 1982년 초대 대통령에 이어 집권한 비야 대통령은 이듬해 ‘가짜 쿠데타’를 일으켜 정적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1990년대 초 일당 독재체제를 철폐하며 다당제 시대를 열었지만 사실상 행정·입법·사법부의 실권을 쥐고 있다. 

그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혼란한 정국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카메룬은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불어와 영어가 공존하는 국가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가 카메룬을 양분해 식민지배한 역사 때문이다. 현재 전체 10개주 중 8개주는 불어를, 2개주는 영어를 쓴다. 두 개의 언어는 카메룬을 불어사용권 프랑코폰과 영어사용권인 앵글로폰으로 갈라 서로 반목하게 만들었다. 

2400만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프랑코폰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앵글로폰은 저개발과 교육, 구직 기회 박탈 등 각종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비야 대통령도 프랑코폰 출신이다. 

앵글로폰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점차 커져 2016년부터 정부의 불어권 우대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당초 평화적으로 시작된 시위는 분리주의 무장단체가 가세하고 이를 비야 정권이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유혈사태로 번졌다. 앵글로폰 주민 대부분은 여전히 독립보다 차별 철폐를 원한다.  

그에 반해 프랑스의 젊은 대통령 마크롱은 호된 시련을 맞고 있다. 지난해 5월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에서 39세의 나이로 당선돼 본격적인 글로벌 30대 리더 시대의 문을 열었던 마크롱은 집권 1년 6개월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했다. 당선 당시 61%였던 득표율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노란조끼’에 굴복한 마크롱 대통령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마크롱은 프랑스 정계에서 신인이다. 현 사회당 정부에서 2014~2016년 경제·산업·디지털 장관을 지낸 것 말고는 특별한 정치 경력이 없다. 의원 등 선출직 경력도 없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마크롱을 장관직에 임명했을 당시 프랑스 언론에서는 ‘마크롱이 누구냐’란 말이 나올 정도다. 마크롱은 파리 명문 앙리 4세 고등학교와 국립행정학교를 나왔다.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재무부 금융조사관으로 잠시 일하다가 대형 투자은행 로스차일드로 이직해 투자 은행가로 성공했다.   

그는 24세 연상의 부인을 두었다. 아내 브리지트 트로뉴는 1953년 생이다. 마크롱은 아미앵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10대 시절 교사이던 아내를 만나 사랑을 키웠다. 두 사람은 2007년 결혼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친 유럽연합(EU) 정책을 강조한다. 프랑스 경제 활성화와 외교 안보 강화를 위해 EU와의 협력이 긴요하다고 본다. EU 1인자로 불리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가까운 사이다. 

그는 집권 초부터 프랑스병을 고치겠다는 구상 하에 노동시장 유연화, 공무원 수 감축과 복지 축소, 교육·연금개혁 등에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왔다. 그러나 다수당의 힘을 앞세운 독불장군식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적 불만은 최근 유류세 인상을 계기로 ‘노란조끼’ 시위로 폭발했다. 

이들은 11월 중순부터 파리의 상제리제 등에서 폭력적인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대에 참가한 시민은 “거만하고 국민과 거리가 먼 통치 스타일에 우리 같은 서민들은 강하게 반발한다”고 말했다. 이뿐이 아니다. 마크롱 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대학 진학 정책에 반대하는 고등학생들까지 시위에 참가해 차량에 불을 지르는 등 격렬한 행동을 보이면서 프랑스 정국이 더욱 혼란에 빠졌다. 

결국 마크롱 대통령은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청원에 서명한 100여만명 시민을 향해 “당신들의 메시지, 나는 그것을 들었다. 나는 당신들에게 직접 대답하고 있다. 당신들이 옳다”고 대답해 유류세 인상을 없던 일로 했다.

지지율 높아진 오스트리아 30대 총리

오스트리아 총리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제바스티안 쿠르츠

그러나 젊다고 해서 마크롱처럼 국민을 우습게 여기고 일방통행식의 통치 행위를 보이지 않는 지도자도 있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이다. 지난 해 그가 소속한 우파 국민당이 총선에서 승리함에 따라 당 대표였던 그가 자동적으로 총리 자리에 올랐다. 당시 CNN은 그가 오스트리아에서 ‘이상적인 사윗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교사인 어머니와 기술자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쿠르츠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중단하고 2003년 국민당의 하위 기구인 청년 국민당의 당원으로 정치에 발을 디뎠다. 2008년부터 4년간 청년 국민당의 의장을 맡았다. 이 기간 두 번의 의장 선거에서 99%, 100%의 지지율로 당선되며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그는 지중해 난민루트 폐쇄, 오스트리아 내 난민 복지 축소 등을 공약으로 내거는 등 강력한 난민정책을 내세웠고 국민은 그의 선명한 노선에 환호했다. 

그는 현재 총선 득표율보다 지지율이 올라가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올해 3% 경제성장률, 5.6% 대의 낮은 실업률로 경제 호황을 이끈 게 인기 요인이다. 연정 파트너인 극우 정당 자유당과는 반 이민정책으로 찰떡궁합의 호흡을 맞추고 있다. 

국제 외교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의 과정에서 영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프랑스와 긴밀히 협력하고 이탈리아와 동유럽 민족주의 국가들과도 반 이민정책을 함께 주도해 세계 지도자들로부터 인심을 잃지 않고 있다. 그의 신사적이고 겸손한 이미지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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