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서울 284 ‘커피사회’ 전…커피도 마시고 다방의 변천사도 한눈에 살펴보고
문화역서울 284 ‘커피사회’ 전…커피도 마시고 다방의 변천사도 한눈에 살펴보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1.04 14:20
  • 호수 6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세시대=배성호기자]

19세기말 국내에 들어온 이후 2000년대까지 커피문화의 흐름 전시

컵 제공해 전시장 돌면서 다양한 커피 무료 시음… 여러 체험 행사도

우리나라 커피 문화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전시가 서울역의 옛 역사인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황실 사진가였던 김규진의 천연당 사진관을 재현한 공간에서 관람객들이 커피를 마시며 기념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
우리나라 커피 문화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전시가 서울역의 옛 역사인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황실 사진가였던 김규진의 천연당 사진관을 재현한 공간에서 관람객들이 커피를 마시며 기념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

2017년 기준 서울‧경기 지역 커피전문점의 숫자는 3만3000여개에 달한다. 그 많다는 치킨판매점(1만9500개) 보다 1.5배가량 많다. 커피를 함께 파는 제과점 숫자까지 더하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게다가 1인당 연간 500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다고 하니 커피공화국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옛 서울역사(문화역서울 284)에 지난달 새로운 커피숍이 하나 들어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오는 2월 17일까지 한시적으로 무료로 운영하는 이 커피숍은 다름 아닌 ‘커피사회’라는 전시회다. 

이번 전시는 19세기 말 국내에 들어온 이래, 1930년대 다방을 시작으로 찻집, 카페로 진화해 온 커피문화를 소개한다. 중앙 로비에 들어서면 티켓 대신 종이컵을 하나 준다. 이 컵으로 전시장 곳곳에 마련된 카페에서 커피를 받아 마실 수 있다. 

본격적인 전시는 1·2등 대합실 티룸에서부터 시작된다. 제비다방, 낙랑팔러 등 커피 도입 후 활성화됐던 근대의 다방들을 되돌아 볼 수 있다. 1920년대 후반 설립된 다방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예술 교류의 장이었다. 제비다방은 천재시인 이상이 운영했고 낙랑팔러는 이상, 박태원 등이 속했던 모더니즘 단체 구인회 동인들이 모이던 곳이다.

이 공간에선 당시 문헌을 통해 근대 커피문화를 소개한다. 대표적으로 박태원이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는 실업자 청년 구보가 머무르는 공간으로 다방을 묘사했다.

“다방의 오후 두 시, 일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그곳 등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이야기를 하고, 또 레코드를 들었다. 그들은 거의 다 젊은이들이었고, 그 젊은이들은 그 젊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자기네들은 인생에 피로한 것 같이 느꼈다” 

마치 2019년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동네 커피전문점에서 노트북을 켜고 책을 펼쳐든 채 실업난을 극복하려는 모습과 묘하게 겹쳐진다.

역장실의 ‘다방이야기’에서는 일제강점기 민간인이 지은 첫 다방인 ‘카카듀’부터 다방의 르네상스기였던 1950년대 명동 다방과 1970년대 청년문화, 1990년대 수입 브랜드 커피 체인점까지의 흐름을 소개한다. 

특히 영화 속 다방 장면을 엮은 작품이 눈길을 끈다. ‘검사와 여선생’(1948), ‘벽 속의 여자’(1969), ‘기쁜 우리 젊은 날’ (1987), ‘철수와 만수’(1998) 등에 나온 다방 장면을 연속해서 보여주는데, 시대는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발견됐다. 모든 다방에 ‘어항’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이어 등장하는 김창겸 작가의 ‘다방 인터뷰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다. 다방을 이용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모은 작품으로 여기서 김 작가는 “다방이 보통 지하에 있었는데, 공간이 어둡고 답답하니 밝고 살아있는 분위기를 내려고 어항과 큰 거울을 설치한 것 같다”고 말한다. 다방의 남다른 환경이 어항으로 대표되는 특유의 공간 문화를 만든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 곳도 마련됐다. 관객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2층에 위치한 ‘그릴’이다. 그릴은 경성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으로, 이상의 소설 ‘날개’에도 등장한 바 있다. 중앙 커피 바(Bar)를 중심으로 등받이가 높은 대합실 의자가 둘러 놓였는데,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근대의 어느 살롱에 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에선 매뉴팩트, 보난자커피, 프릳츠커피, 헬카페 등 현대의 커피숍이 기간별로 ‘근대’를 주제로 한 커피를 선보인다. 커피값은 받지 않지만 매시간 60잔 한정으로 제공한다. 

1층 복도 ‘커피바’와 인스턴트 커피자판기가 놓인 ‘오아시스’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다. 이 밖에도 커피를 마시며 탁구경기를 즐길 수 있는 ‘윈터클럽’, 신구 세대의 음악가들이 자신의 애청곡을 직접 디제잉 하는 ‘토요 디제이 부스’ 등 다양한 체험 행사가 진행된다.

또 전시에는 회화, 미디어, 조형, 사진, 영상, 그래픽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중간공간제작소, 성기완, 백현진, 양민영, 이주용, 박길종, 김성기, 김남수, 박민철, 김찬우&더37벙커, 마르코 브르노, 서울과학사, 윤율리, 김민지 등 40여 팀의 작품을 전시장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문화역서울284 관계자는 “일상 속에서 만나는 커피를 통해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는 특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전시를 기획했다”면서 “여러 가지가 혼합된 한국 특유의 커피 문화를들여다보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