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88] 바다를 건너며[渡海]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88] 바다를 건너며[渡海]
  • 권 경 열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 승인 2019.01.11 10:49
  • 호수 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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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며[渡海]

푸른 바다에 풍파 없어 잔잔하다만

내 충신이 교타를 감동시켜 그런 것이랴

작은 배로 탈 없이 잘 건너고서야

청회는 멱라와 다르다는 말 실감하겠네

碧海風恬不起波  (벽해풍념불기파) 

敢言忠信感蛟鼉  (감언충신감교타)

輕舟穩涉能無恙  (경주온섭능무양)

始驗淸淮異汩氵羅 (시험청회이멱라)

- 김창집(金昌集, 1648~1722), 『몽와집(夢窩集)』권4 「남천록(南遷錄)」


조선 후기의 대신인 몽와(夢窩) 김창집(金昌集, 1648~1722)의 시이다. 김창집의 자는 여성(汝成)이고, 본관은 안동이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증손자이고,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의 장남이다. 영의정을 지냈으며, 이른바 ‘노론사대신(老論四大臣)’의 한 사람이다.

김창집 등 대신들을 중심으로 한 노론(老論)은 경종 1년(1721)에 연잉군(延礽君)의 왕세제(王世弟) 책봉과 대리청정을 추진하여 성사시켰는데, 곧바로 명분을 앞세운 소론(少論)의 반격으로 실각하여 귀양을 가게 되었다. 연잉군은 영조(英祖)가 왕자일 때의 봉호(封號)이다. 이 사건을 신축옥사(辛丑獄事)라고 하는데, 김창집은 이 당시 74세의 고령으로 거제도(巨濟島)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교타(蛟鼉)는 바다나 강 속에 살면서 뱃길을 방해한다고 전해지는 수중 동물들로, 이들의 방해 없이 무사히 바다를 건너게 된 안도감이 시에서 느껴진다. 이 시는 북송(北宋) 때의 곧은 신하인 당개(唐介)의 시를 점화(點化, 고쳐 새롭게 함)한 것이다. (중략)

‘감언(敢言)’은 1차적으로는 ‘감히 ~에 대해 말하다.’, ‘과감하게 말하다.’라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시에서는 거의 ‘감히 ~라고 말할 수 있으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상황으로 볼 때 감히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는 다소 위축된 어기를 담은 용어로, 주로 짝수 구의 첫머리에 많이 쓰인다. 평소 직언을 많이 하던 신하와 관련된 시에서 쓰이게 되면 무의식 중에 ‘과감하게 직언을 하였다’는 의미로 오해할 수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감설(敢說)’이라는 시어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1차적 의미로 사용되든 시적 의미로 사용되든, ‘감언’에서 느껴지는 어감은 ‘주저한다’는 것이다. ‘감히’라는 말 자체에 이미 하지 말아야 할 행위, 또는 어려운 대상에 대한 행위를 한다는 전제가 담겨져 있다. 그렇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고, 이는 인지상정이다.

특히 1차적 의미, 즉 ‘과감하게 말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감언이 알게 모르게 상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이고, 크든 작든 다시 자신에게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벼이 강요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침묵이 늘 선택 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떤 조직이든 중간 지위에서 주어진 권한이 많아질수록 ‘감언’이라는 책임도 함께 커진다. ‘감언’을 하지 않으면 책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리더가 감언을 받아들일 도량과 식견이 있는데도 감언하지 않는 것은 직무 유기를 넘어 기만하는 것이 아닐까? 감히 말하랴? 감히 말해야 한다.      권 경 열 한국고전번역원 성과평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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