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닭곰탕과 경로당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닭곰탕과 경로당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1.11 13:19
  • 호수 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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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곰탕. 닭을 손질해 찬물에 넣고 푸욱 무르도록 익힌 후 살만 발라 양념을 해서 다시 닭 육수에 넣어 끓인 음식이다. 이 음식을 처음 접한 건 군대에서였다. 곰탕은 익히 들어 잘 알았지만 닭곰탕은 생소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2000년 중반까지만 해도 군대 음식은 메뉴별로 수준차이가 심했다. 어떤 음식은 맛있었지만 몇몇은 생존을 위해 입에 욱여넣었을 정도다.

일병 때까지만 해도 필자에게 닭곰탕에 대한 선호도는 중간정도였다. 하지만 단 한번 일일 취사를 다녀온 후 닭곰탕이 나오면 혼날 것을 각오하고 식사를 기피하게 됐다. 각 부대에서는 수백명 장병들의 식사 준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취사병 외에도 일일취사병을 돌아가면서 한다. 일병 때 마침 일일취사를 맡았는데 그날 메뉴가 닭튀김이었다. 

당시 복무했던 부대 인원이 400여명이었는데 이들이 먹을 닭을 준비하기 위해선 대형 가마솥 두 개 분량의 닭이 필요했다. 안전을 위해 튀기기 전 한번 삶았는데 이때 보지 말아야 할 것과 마주했다. 1차적으로 닭을 끓이고 물을 버리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닭기름을 목격한 것이다. 

그날 이후로 이상하게도 닭튀김이 아닌 닭곰탕을 보면 입맛이 사라졌다. 제대한 이후에도 한동안 그 이미지가 남아서 닭곰탕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를 쳤다. 그만큼 이미지가 강렬했고 바뀌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후회스럽다. 수백만 마리의 닭을 적은 물로 끓였으니 당연히 기름이 훨씬 더 도드라진 것뿐이었다. 물을 많이 넣고 기름도 틈틈이 걷어내는 닭곰탕과는 아무 상관도 없었고.

1989년 ‘노인정’(老人亭)에서 ‘경로당’(敬老堂)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사회의 어른인 노인들에 대한 존경심과 그들이 삶의 나침반이 돼주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작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경로당은 ‘낡고 고루하다’는 이미지가 강화됐다.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된 건 꼭 경로당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경로당은 꾸준히 환경정화 활동을 자발적으로 벌이고 있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꾸준히 기부도 하고 있다. ‘경로당 기부’만 검색해도 관련 기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은 나쁜 이미지를 유독 더 잘 기억한다. 몇몇 경로당의 일탈이 대중들 뇌리에 단단히 박혔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크게 만들었다. 단 한 번의 일일취사로 닭곰탕을 나쁜 음식으로 기억했듯 말이다.

경로당도 시대정신에 보조를 맞춘 변화가 필수다. 닭곰탕처럼 진국인 경로당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홍보도 필요하다. 경로당이란 이름을 지은 본래 의미를 되찾기 위해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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