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청와대로 가는 기자들
[백세시대 / 세상읽기] 청와대로 가는 기자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01.11 13:37
  • 호수 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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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해외에 나가기 어려웠던 시절 일부 기자들의 꿈은 해외주재특파원이었다. 옆 책상에서 일하던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가족들과 함께 선진국 행 비행기를 타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선진국 생활을 누리며 아이들에게 선진국 교육을 받게 할 수 있고 임기를 끝내고 회사로 복귀하면 탄탄한 승진이 보장되는 드문 기회였기 때문이다. 

경력기자들의 로망은 청와대, 국회, 정부요직 등 정치권력 입성이다. 그렇지만 기자라고 해서 모두가 권력핵심에 편입되는 행운은 오지 않는다. 그런 기회는 정치·사회·경제부 등 힘 있는 부서 출신 기자들의 몫이다. 정치권에 자사 출신을 많이 내보낸 언론사를 파워 있는 매체로 보거나 실제로 그런 언론사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우월감 따위를 갖던 시절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대통령의 정치 이념에 따라 특정 언론사 집중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선 보수우익 성향을 보이는 한국일보를 비롯 조·중·동, KBS 출신들이 영입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선 진보좌파 성향의 언론사 기자들이 잇따라 입성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2기 청와대 비서진을 출범시켰다. 문 대통령의 이념에  맞게 진보 성향의 언론사 출신 기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합류한 언론인 출신들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여현호 국정홍보비서관과 윤도한 청와대 신임 국민소통수석이 그들이다. 

여현호 비서관은 최근까지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로서 칼럼을 쓰다 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참고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한겨레신문 출신이다. 청와대 비서관 중 같은 신문사 출신이 2명이나 된 건 드문 일이다. 윤도한 수석은 1985년 MBC에 입사한 이후 최근 3년간 시사 프로그램 ‘뉴스 후’ 진행을 맡는 등 대표적인 탐사 보도기자였다. MBC 노조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김종화 바른미래당 대변인은 이번 인사와 관련한 논평에서 “현 정권은 청와대를 ‘친문’(親文) 경호대로 가득 채우겠다는 일관성에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특히 여현호 신임 국정홍보비서관 임명은 청와대가 언론을 대하는 형편없는 인식 수준과 언론인 개인의 낮은 직업 소명의식이 만들어낸 ‘갈 데까지 간 인사’가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여 비서관이 몸 담았던 한겨레신문에서 조차 이번 인사에 대해 엄중한 입장을 내놓았다. 한겨레신문사는 1월 10일자 신문에 ‘한겨레신문사의 입장’이란 제목으로 “여현호 전 선임기자가 사실상 현직에서 곧바로 청와대 비서관으로 이직한 것은 한겨레신문사가 견지해온 원칙, 임직원과 독자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다. 청와대 역시 인사 과정에서 저널리즘의 가치와 언론인의 윤리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라고 게재했다.   

재밌는 점은 여 비서관 본인도 기자 시절 타 언론사의 청와대 행을 비난했던 장본인이란 사실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다.  

여 비서관은 2015년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시절, MBC 정연국 당시 제작국장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것을 사설로 강하게 비판했다. ‘현직 언론인이 최소한의 완충 기간도 없이 언론사에서 권력기관으로 곧바로 줄달음쳐 간 것’, ‘언론 윤리의 실종도 참담하거니와 그런 일이 거듭 되풀이 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 ‘청와대의 잘못된 인식도 비판 받아 마땅하다. 청와대는 텃밭의 무 뽑듯 말 잘 듣는 언론계 인사를 골라 빈자리를 채우는 용도로 언론을 활용하고 있다’ 등이다.

청와대에서 언론인 출신들을 자꾸 불러가는 걸 보면 언론인들의 능력을 높게 평가하기 때문인가 본데 최근 청와대 대변인의 역량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헌법과 정부조직법은 모든 국법행위는 국무위원 즉, 정부 부처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청와대 비서들의 정책 결정 과정과 부처에 대한 지시는 위법이다. 

김의겸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31일, 신재민 기획재정부 전 사무관의 ‘청와대 권력 일탈 폭로’와 관련해 ‘청와대가 국채발행에 개입할 권한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권한이 있다”고 대답했다. 대통령 비서실은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할 뿐 어떤 법적 권한도 행사할 수 없는 사실을 모른 채 김 대변인은 이런 엉뚱한 답변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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