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때론 눈물도 큰 힘이 된다
[백세시대 / 금요칼럼] 때론 눈물도 큰 힘이 된다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9.01.11 13:45
  • 호수 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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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눈물은 감정을 정화시키는 등

긍정적인 작용 많이 해

나이 들어서 감사의 눈물이나

결단의 눈물 흘릴 수 있다면

노년기 행복 실현에 도움 될 것

나이를 먹으면 감정이 메말라 눈물이 적어진다고 한다. 하긴 나이 먹는 동안 산전수전 다 겪어 웬만한 일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되니, 너무 슬프거나 대단히 감동적일 때 나오는 눈물이 적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남성인 경우 생리적인 이유 외에도 어려서부터 사나이는 눈물을 보이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은 탓에 눈물이 더 적다. 그러나 눈물이 적은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는 철들고 딱 한 번 눈물을 흘려 보았던 것 같다. 20대 후반 제조업을 하는 어느 기업에 다닐 때였다. 군포에 공장이 있었는데 수입물량이 커서 공장부지 안에 보세창고를 두었다. 보세창고에 입고된 자재는 아직 수입 절차를 밟은 게 아니어서 입고된 다음 날 보세창고에 파견된 세관원으로부터 정식 수입 절차를 밟아야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공장직원들은 자재가 들어왔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절차 따위는 무시하고 그냥 갖다 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나는 세관원에 대한 회사 측의 카운터 파트였는데 이런 경우 매우 난감한 상황이 전개된다. 무조건 봐달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는 자기 기분에 따라 봐주기도 하고 안 봐주기도 했다. 안 봐주면 밀수로 처리되어 회사가 벌금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가끔 벌금 고지서를 들고 경리부에 가는 일은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평소에 그의 기분을 맞춰주면서 가급적 많이 봐달라고 하는 거였다. 점심은 매일 임원식당으로 모시고, 저녁은 자주 군포나 안양 맛집으로 모셨다. 그가 때때로 늦게 귀가해도 된다는 의사표시를 하면 내 돈으로 밤늦게까지 접대했다. 당시 나는 신혼이었는데 그땐 지하철도 없던 때라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하는 일이 잦아 아내에게 보통 미안한 게 아니었다.  

나는 좋은 대학 졸업하고 군대도 ROTC 장교 출신이라 나름 엘리트라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성품이나 자질로 보아 정말 가까이하기 싫은 사람에게 매일 머리 조아리며 가장된 미소로 비위를 맞춰주는 건 정말 고역이었다. 내가 왜 이렇게 추락했나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반년을 지내면서 주말에 마음의 여유를 좀 회복하면 찬송가를 불렀다. 나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부르는 찬송은 큰 위로가 되면서 동시에 하나님께 나의 사정을 아뢰는 간절한 탄원서가 되었다. 열심히 찬송을 부르다 보면 눈물범벅이 되어 찬송가 가사를 볼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원래 군 제대 후 유학할 계획이 있었다. 1년 정도 사회경험을 하면서 유학 준비를 하자고 취업하였는데 다른 회사 경력까지 포함해 5〜6년이 그냥 지나가 버린 것이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가, 내 인생을 이렇게 허비할 수 없지 않은가? 찬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넋 놓고 울부짖는 정도까지 되면서 비장한 결심을 하게 되었다. 회사 때려 치우고 원래 계획대로 유학을 가자!

아내와 의논하고 회사에 사표를 냈다. 1년 정도 준비해서 도미 유학을 하게 되었고 7년 반 동안 사회학, 도시학,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여 학위 받고 귀국해서 모교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사회복지학은 원래 약자에 대한 관심이 많은 학문인데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까이서 본 하급직원들의 삶에 대한 이해는 공부하는 동안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내가 갖고 있는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은 그때 나를 코너에 몰아놓고 다그치듯 각성하게 하신 것이다. 나에게 그 세관원은 잠시 악역을 맡은 일종의 수호천사였다. 그런 극한의 상황이 아니었다면 난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여럿이겠지만 긍정적인 작용도 많이 한다. 눈물은 감정을 정화시켜 상황에 따라 위로와 격려를 해주기도 한다. 국제경기 시상식에서 금․은․동 메달을 받는 선수들이 자기 나라 국기가 게양될 때 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이심전심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모두가 하나되는 동지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눈물이 결심하게 하는 계기를 주었던 것 같다. 

나이 먹어서도 감격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괜찮은 삶이 아닐까? 매일 지루하고 반복적인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작은 일일지라도 무엇엔가 도전하고, 성취하고, 스스로 대견해 하는 그런 일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노년기에 꿈과 행복을 실현하는 좋은 방법이다. 신 앞에 고요히 앉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여정을 생각하며 참회와 함께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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