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양첩과 천첩 그리고 서얼
[108]양첩과 천첩 그리고 서얼
  • 글‧그림=김성환
  • 승인 2019.01.25 14:10
  • 호수 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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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우의 유식한 잡학 왜?

조선시대에서는 처와 첩의 신분상 계급이 뚜렷해 대우에 차이가 있었고 신분의 차이는 자식에게도 이어져 출세에 막대한 지장을 줬다. 남성 위주의 신분사회에서 태어난 자식이 그 아비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미에 의해서 신분이 규정되었던 것이다.
첩에도 서열이 있었으니 첩의 출신에 따라 양첩(良妾)과 천첩(賤妾)으로 나뉜다. 양인(良人)의 딸을 첩으로 삼으면 양첩, 기생이나 계집종을 첩으로 삼으면 천첩이 되었다. 
경국대전을 보면 문무관 2품 이상 양첩 자손은 정오품을 넘을 수 없다고 명기돼 있다. 명종실록에 따르면 양첩(良妾)의 아들을 서(庶), 천첩(賤妾)의 아들은 얼(孼)이라 했다. 흔히 서자를 서얼이라고 통칭하지만 얼자는 서자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조선조 신분사회에서는 개인의 능력보다 철저하게 출신여부에 따라 그 위상이 달라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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