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드라마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드라마의 착한 사람 콤플렉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2.21 20:41
  • 호수 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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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일본에서는 ‘한자와 나오키’라는 드라마가 방영돼 신드롬급 인기를 끌었다. 은행원 출신 베스트셀러 작가 이케이도 준의 ‘우리들 버블 입행조’를 드라마화 한 작품으로 3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참고로 일본은 현재 우리나라처럼 20% 시청률만 올려도 초대박으로 평가받는다.

작품은 일본의 버블경제시대가 끝날 무렵 출세를 위해서 대형 은행에 입사한 한자와 나오키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부정한 세력과 맞서는 내용을 다룬다. 줄거리만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이 작품은 필자에게 색다른 충격을 선사했다. 

시작은 평범했다. 기업의 대출 업무를 맡고 있는 나오키는 상대하는 회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늘 친절하게 대하는 ‘착한 사람’다. 얼굴에서부터 선함이 묻어나는 그는 일처리도 꼼꼼하게 하면서 두터운 신뢰를 받는다. 그는 어느 날 지점장의 지시로 한 회사에 5억엔, 우리돈으로 5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빌려준다. 그러나 돈을 빌려주자마자 회사가 도산했고 고위 관리자들이 이에 대한 책임을 나오키에게 덮어씌우려고 한다. 이때 우리나라 드라마 주인공이었으면 억울하지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착한 척 굴며 회사를 나올 것이다. 그러나 나오키는 달랐다. 자신을 겁박하는 세력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당한 만큼 되돌려주겠다. 두 배로 갚아주마.”

그는 작품 내내 결정적인 순간마다 이와 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바보같이 당하다가 종영 즈음에야 겨우 반격하는 착하디착한 국내 드라마 주인공과는 달리 방영 내내 당한만큼 돌려준다. 그렇다고 약자를 괴롭히는 건 아니다. 약자에게는 약하고 강자에게는 두 배로 강해진다.

처음 ‘두 배로 갚아주마’라는 대사를 들었을 때 느낀 카타르시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인공은 착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이를 완전히 무너트려준 작품이었다. 그러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국산 드라마들이 시시해진 것이다. 기존에는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종영을 기다리며 참고 봤지만 한자와 나오키를 시청한 이후에는 그냥 채널을 돌려버린다. 국내 신작이 나오면 보긴 본다. 10분 이상 두고 보지 못할 뿐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한국드라마, 특히 지상파 드라마 주인공들은 유독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매력도 없다. 

타인에게 피해 안 주고 착하게 사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자기 인생을 망치려는 사람에게까지도 관용을 베푸는 건 멍청한 짓이다.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다. 시청률에도 나타나듯 이 모자란 인간들을 참고 봐줄 시청자들이 점점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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