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두 번째 서른, 거울 앞에서
[백세시대 / 금요칼럼] 두 번째 서른, 거울 앞에서
  • 신은경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 승인 2019.02.21 20:52
  • 호수 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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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오랜만에 잡지와 인터뷰하며

얼굴 사진의 주름에 

손대지 말라고 특별히 부탁

사진 보니 서른 살 때가 생각나

예나 지금이나 나이 포용하는 중

아주 오랜만에 월간여성지에 인터뷰를 했다. 최근에 발간된 에세이집 <내 나이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가 관심거리가 되어 요청을 받았나 보다. 월간지 인터뷰는 아마도 10여년만인 것 같다. 한때는 공인으로 살았던 사람이 지난 10년 동안 대중에게 전혀 관심 없는 사람으로 살았다는 이야기일까?

하긴 오늘도 처음 만난 어떤 분의 입에서 질문이 나왔다.

“실례지만 요즘 무슨 일을 하며 지내세요?”

내 딴엔 꽤 바쁘고 사람들이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지내는지 비교적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지만 그렇지가 않았나 보다. 사실 예전에 좀 유명했던 사람 중에 그 사람이 요즘 무슨 일을 하며 지내는지 나도 잘 모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대학에도 나가고 강연도 하고 글도 쓰고 그래요”라고 친절하게 대답해 드렸다.

내 모습 그대로 우아하게 늙어가자고 에세이집에서 주장한 터라, 전문 미용실에 가서 메이크업과 머리 모양를 손봐 달라고 할 맘이 내키지 않았다. 원래 내 인상과 다르게 ‘아주 예쁘게만’ 해 준 분장을 하고 사진을 찍으면 정말 부끄러울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손으로 직접 화장을 하고 내 손으로 머리 손질을 하고 나갔다. 내 옷장에 있는 옷 중에 적당한 거로 골라 입고 나섰다. 부끄러울까봐 전문가의 손을 빌리지 않았지만, 부끄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는 일은 실로 오랜만이다. 전문 포토 아티스트가 전문 조명을 세팅하고 작품촬영을 아주 오래 정성껏 하였다. 대화는 아주 재미있었다. 최근에 출간된 책에 나오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끝내고 나오며 내가 말했다.

“제 얼굴에 주름 지우지 말아주세요. 이거 만드는 데 꽤 오래 걸렸거든요.”

아주 오래전 책에서 읽은 어느 외국 여배우의 말로 기억된다. 당시 나는 젊었지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걸 보면 나이든 그녀의 말이 멋있게 들렸었나 보다. 그래서 나도 늙으면 그렇게 말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이제 내 얼굴에도 충분히 주름살이 있으니 그 말을 흉내 내어 보아도 좋을 것 같았다.

잡지가 나왔다. 진짜 주름에 전혀 손대지 않는 사진이 클로즈업으로 나왔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한편 다행스러웠다. 오랜만에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사람의 얼굴 중 가장 변하지 않는 부분은 코라고 생각했었다. 나머지 부분은 아무리 애써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히 변하기 마련이라고 짐작은 했다. 눈꺼풀은 아래로 쳐지고, 뺨은 자유낙하를 하여 양쪽 턱에 작은 주머니를 만들고 있다. 날마다 웃고, 먹고, 말하는 입가에는 주름이 생기고, 머리칼은 잃어버린 지난날들을 말해주듯 휑하니 성글게 된다. 그런데 코만은 젊었을 적 그 모양이 변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30년 전 잡지에 나왔던 나의 사진을 뒤져 비교해 보았다. 날카로운 콧날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지금은 뭉툭하다. 뺨에 살이 쪄 코가 묻혔나? 자꾸 비비다 보니 뭉툭 코가 되었나? 아무 생각 없이 여드름이나 뾰루지를 손톱으로 짜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후회되는 것이 코만일까?

잡지를 뒤지던 책장 앞에서 서른을 갓 넘긴 때 썼던 책이 눈에 띄었다. <9시 뉴스를 기다리며>. 경력 10년의 한창 전성기 뉴스앵커일 때 쓴 책인데, 그때에도 첫 번째 서른을 넘기며 나이 타령을 하고 있었다.

“20대 후반에서 30대로 치닫는 길목에선 거울 앞에서 속상해질 때가 많았다. 잠 잘 자고 세수만 해도 생생하고 말갛던 피부가 매일 두껍게 분장하고 뜨거운 10여개의 조명 아래 앉아 구워 댄 덕분에 생기를 잃고 거칠어져 갔다. 갓 졸업하고 해마다 들어오는 후배들의 젊고 발랄함과는 쉽게 비교되었다.”

첫 번째 서른에도 나이 먹는 일은 나를 긴장케 했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기특하게도 자신의 나이를 포용하고 그 의미를 잘 깨달은 것 같아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서른은 내게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경험과 경력이 중요시되는 뉴스 앵커의 세계에서 ‘주름을 가리는 분장’을 하게 된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주름을 그려야 하는’ 초년생에 비한다면 말이다. 서른을 넘기며 깨달은 몇 가지 단맛은 내게 여유와 평화를 주었다. 그래서 이제 또 마흔을 넘기면서 더 큰 몇 가지를 얻게 되리라는 기대가 있다. 더 큰 지혜와 더 큰 진리를 터득하면 또 한 번 평화로운 미소를 배울 것이다. 그때 가서는 또 다른 다음의 도약을 기다리며 가슴 설렐 것이 분명하다.”

첫 번째 서른에 쓴 나의 글을 읽으며 두 번째 서른을 맞이한 나는 거울 앞에서 오늘 흐뭇하다. 그래 잘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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