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악을 쓰고 살면 알게 되는 것들
[백세시대 / 금요칼럼] 악을 쓰고 살면 알게 되는 것들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19.03.08 14:07
  • 호수 6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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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관절에 문제가 생겨 

음식 먹기조차 불편해져

그런 와중에 차량 문제로 

스트레스 받았더니 턱이 또 아파

여유 가질만도 한데 난 왜 이럴까

“세상에. 뭔 일을 하시는데 이렇게나 이를 악물고 사셨어요? 왼쪽 턱뼈가 다 갈려 하나도 안 남았네요. 턱 디스크는 떨어져 나갔는지 없어져 버렸네.” 

턱관절 전문 선생님의 말씀이다. 고기 씹는 건 언감생심 욕심내지도 못하고, 김밥이나 졸깃한 떡볶이를 먹을 때도 왼쪽 턱을 손으로 부여잡고 기를 써서 먹기 시작한 지 어언 6개월. 이리 심각한 줄 알았더라면 미리 병원에 올 걸 그랬나 보다.    

난,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를 심하게 꽉 물어서 나중엔 턱이 아파 입을 잘 벌리지 못한다. 어느 때는 아래윗니가 맞물려지지 않을 때도 있다. 예전엔 시간이 지나면 슬슬 나아졌었는데 이번에는 단단히 망가졌나 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스트레스라는 것. 남이 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저 혼자 만들고 저 혼자 끙끙거린다. 10년 전 취미로 드럼을 시작했다. 한 해 두 해 세월 따라 몸도 가는가. 영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늘어야 할 실력 대신 욕심만 늘어간다. 

남보다 특별한 음악적 재질도 없고 신체적인 날렵함도 없고 꾸준히 연습할 인내심도 없고.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하나, 남보다 잘하고 싶은 욕심뿐. 며칠 동안 발을 집중 연습했더니 오른쪽 무릎이 나가 관절염이 오더니, 손이라도 민첩하게 해보려고 손 연습을 집중적으로 했더니 손목터널증후군이 왔다. 

용량 작은 컴퓨터에 너무 많은 정보를 욱여넣으면 처리를 못해 과부하가 걸리듯이 내 몸도 과부하가 걸려 병이 생겼나 보다. 그 덕에 이제는 드럼을 칠 때마다 권투선수가 링에서 끼는 그런 마우스피스를 껴야 한단다. 

며칠 전, 대형마켓에 들렀다가 주차 중에 사이드미러가 기둥에 부딪치는 사고가 났다. 주섬주섬 부서진 사이드미러 조각들을 챙겨 평소에 잘 아는 자동차 정비소로 갔다. 이틀 후. 고쳐진 차를 가지러 갔다. 그런데. 내차 뒤를 막고 있는 다른 손님의 차가 있었다. 열쇠를 주며 수리를 맡기고 갔다는데 글쎄 이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 거다. 

“사장님, 차 빨리 빼주세요. 막히기 전에 빨리 양평으로 가야 해요.”

계속 재촉을 해봤지만 착한 사장님은 미안하단 뜻인지 내게 한번 웃더니 여기저기 전화만 한다. 나름 해결 중인가 보다. 세상에, 이 상황에서 저렇게 웃음이 나올까. 차주에게 전화하고 보험사 직원 부르고 정비사가 오고. 그래도 시동은 걸리지 않고. 결국은 정비센터에서 직접 차를 가지러 내일 온단다. 화가 치밀었다. 

“아저씨. 어떻게 하라고요.” 호칭이 사장님에서 아저씨로 바뀌었다. “그러게요. 어쩌죠? 제가 너무 미안해 할 말도 없네요.” 여전히 웃고 있는 사장님. 혼자 투덜대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다음날 다시 오기로 했다.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중앙선 기차로 다시 갈아타고 양수역에서 내려 다시 택시 타고. 이렇게 복잡한 방법으로 두 시간 만에 집에 돌아왔다. 퇴근시간 탓인지 중앙선 기차에서는 거의 40분 동안을 내내 서서 왔다. 다음날도 똑같이 거꾸로, 양수역까지 택시 타고, 중앙선 타고,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서울로 간 다음 수리된 차를 찾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가 없네요. 죄송해요.”

여전히 웃으면서 이리 말하는 그에게, 여전히 화도 내지 못한 채 속만 끓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속이 부글부글 원래는 차 주인이든 정비소 사장님이든 견인이라도 해서 차를 빼주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이날 받은 스트레스 덕에 또 턱이 뻐근해서 약 먹고 며칠 동안 찜질 중이다. 

일은 이미 일어난 것. 사실이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바쁜 일도 없는데 운동 삼아 다음 날 다시 간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다. 속 끓여 병 생기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정작 문제를 풀어야 할 정비소 사장님은 저렇게 여유만만인데 나만 혼자 부글부글. 화내면 지는 거라더라. 화를 낸 내가, 여유 있게 웃는 사장님한테 완전 KO패 당했다. 여유 있는 사장님이 부럽다.

여유가 없어서 생기거나 욕심이 과해서 생기거나. 그렇게 생겨난 스트레스들이 지금 내 몸을 망치고 있는 중이다. 슬슬 욕심을 다 내려놓고 여유를 가져야겠다. 이제 그럴 나이가 된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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