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뱅킹 못하면 금리‧수수료 손해…노인 우대는 못할 망정 손해 보게 해서야
모바일뱅킹 못하면 금리‧수수료 손해…노인 우대는 못할 망정 손해 보게 해서야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3.15 10:53
  • 호수 6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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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 이상엔 렌탈도 거부

[백세시대=배성호기자]

통신 실버요금제, “혜택 많다”는 선전 무색할 정도로 혜택 적거나 비슷   

금융기관‧기업, 시니어 대상 지속적인 교육 투자로 불이익 없애야

최근 시중은행이 모바일금융 이용자에 대한 혜택을 강화하면서 은행창구를 찾는 고령자들이 금리 및 수수료 등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은행업무를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근 시중은행이 모바일금융 이용자에 대한 혜택을 강화하면서 은행창구를 찾는 고령자들이 금리 및 수수료 등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은행업무를 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최근 경기 구리의 한 신도시로 이사한 이경애(63) 씨는 은행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평소 돈을 이체할 때마다 수수료를 아끼려 은행에 직접 갔지만 새로 온 동네에 은행이 아직 없어 매번 1km 떨어진 지점으로 가야 했다. 이 고민을 들은 자녀가 인터넷은행을 이용하면 온라인 이체에 수수료가 들지 않는다는 걸 알려줬다. 부랴부랴 인터넷통장을 개설하고 모바일 뱅킹을 배웠지만 아직도 손에 익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이 씨는 “스마트폰이나 PC 사용이 서툴면 돈을 더 내야 되는 상황이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근 젊은 사람들에 비해 정보 습득이 느린 노인들이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노인들을 위한 통신 실버요금제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혜택이 거의 없고 은행 업무를 볼 때도 상대적으로 불리한 금리를 적용받고 수수료를 더 내야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먼저 한국소비자원이 이동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를 대상으로 실버요금제(65세 이상 가입 가능한 요금제)를 비교·분석한 결과 부가서비스를 제외한 통화·문자 및 데이터 제공량 등에 있어 최근 출시된 일반 저가요금제와 차이가 거의 없거나 데이터 제공량이 오히려 적었다.

SK텔레콤과 KT의 경우 가격대비 데이터 제공량을 살펴보면 실버요금제가 일반 저가요금제보다 비쌌다. LG유플러스는 실버·일반요금제가 서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SK텔레콤 실버요금제인 ‘band 어르신 1.2G’는 월정액 3만7400원에 1.2GB(기가바이트)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반면 일반 저가요금제인 ‘T플랜 스몰’의 요금은 3만3000원으로 더 싸면서도 데이터 제공량은 1.2GB로 같았다. 

KT도 실버요금제인 ‘시니어 32.8’이 요금 3만2890원에 데이터 제공량은 600MB인 반면 일반요금제인 ‘LTE 데이터선택’은 3만3000원에 데이터 1GB(1000MB)가 제공됐다. 데이터 제공량이 두배나 차이가 난 것.

금융회사의 불완전판매나 잘못된 투자 권유로 피해를 입는 어르신도 늘고 있는 추세다. 불완전판매는 상품에 대한 기본 내용이나 투자 위험성에 대한 안내 없이 금융상품을 파는 행위를 말한다. 

은행 이자가 연 2%대에 머물면서 노인 투자자들도 주식, 펀드는 물론이고 투자위험이 높은 파생상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지난해 6월말 기준 ELS(주가연계증권) 등 파생결합증권 발행 잔액 101조 원 중 개인투자자 투자금액은 47조2000억 원. 이중 60대 이상이 투자한 금액은 41.7%에 달했다. 안정적인 투자성향을 보이던 60대 이상 고령 투자자들도 대거 위험성이 높은 ELS 투자에 뛰어든 것이다. 문제는 복잡한 상품구조와 투자 위험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채 투자에 나서는 고령층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투자설명서를 읽고 계약서에 사인은 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상품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라며 “젊은 투자자들은 손실을 보더라도 계속해서 소득이 발생하니 이를 만회할 수 있지만 노년층은 노후자금에 손실을 볼 경우 바로 생활에 타격이 온다”고 지적했다. 

물론 고령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긴 하다. 2016년부터 금융회사들은 고령투자자 전담창구를 마련하고 파생결합상품 투자를 권유할 때는 관리직 직원(지점장 또는 준법감시인)의 사전확인을 거쳐야 한다. 또 2017년 도입된 숙려제도는 부적합 투자자나 70세 이상 투자자가 상품 구조 및 투자위험 등을 충분히 숙지하고 투자결정을 할 수 있게, 금융투자 상품 청약 후 2영업일 이상 숙려기간을 투자자에게 주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금융회사들이 이런 제도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금감원이 지난해 미스터리 쇼핑(고객으로 가장해 서비스 평가)을 통해 ELS 등 파생결합증권 판매실태를 점검한 결과 은행들은 고령투자자 보호와 관련된 항목들에서 대부분 낮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숙려제도(34.0점)와 고령투자자에 대한 보호제도(35.7점), 적합성 보고서 제도(38.4점) 등은 30점대(100점 만점)의 ‘낙제점’을 받았다

또 최근 금융권의 핵심인 모바일뱅킹을 이용하지 않는 노인들은 금융거래를 할 때 더 많은 비용을 내고 있다. 현재 은행들은 금리가 높은 모바일 전용 예·적금 상품을 팔거나 앱을 이용하면 창구에서 가입할 때보다 금리를 얹어준다. 예를 들어 KEB하나은행의 ‘하나 더 적금’은 온라인 채널을 통해 가입하면 연 0.2%P 금리를 더 준다. 하지만 주로 은행 영업점만 이용하는 60대 이상 고객은 이런 혜택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또 은행 창구에서 다른 은행으로 송금할 경우 100만원 이체는 2000원, 1000만원 이체는 3000~4000원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하지만 모바일로 송금하면 수수료가 500원에 그친다. 인터넷 전문은행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수수료를 아예 면제해 준다.

정수기, 비데 등을 일정기간 빌려 쓰려 할 때 고령이라는 이유로 가입을 거부당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일부 렌털 중개업체는 75세 이상 고령자의 가입을 아예 막고 있다. 생활 가전제품을 대여할 때 본사를 통해서도 하지만 중개업체를 통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고객을 모집한 중개업체는 본사에서 주는 수당의 65~70%를 바로 받은 뒤 일정 기간(통상 1년) 회원이 유지해야 나머지를 받는다. 이때 고령 고객이 사망하면 수당을 온전히 못 받을까 봐 고령층 회원 가입을 봉쇄하는 곳이 많다. 

본사에 직접 연락하면 가입할 수 있지만 노인들의 경우 이런 구조를 모르기 때문에 가입 거절을 당해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이라는 이유로 경제적인 손실을 보거나 이용에 차별을 받지 않도록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직접 교육에 나서고 노인들을 위한 친화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개발해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도 “현재 은행권을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는 모바일교육은 당장 효과를 보지 않더라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면서 “사회적 배려 측면에서 필요하기도 하지만, 성장이 정체된 시장 성장의 돌파구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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