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웰다잉의 시대
[백세시대 / 금요칼럼] 웰다잉의 시대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9.03.15 13:30
  • 호수 6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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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은 웰빙의 연장선에 있어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는 보람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위안될 것

스트레스 심한 세상 사는 현대인

영성훈련 받을 필요도 있어

나의 장인어른은 4년 전에, 아버님은 2년 전에 별세하셨는데, 나는 두 분의 투병 생활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재임 시절 대학원에서 ‘죽음과 유가족(Death & Bereavement)’이라는 과목을 여러 번 강의하였지만, 막상 부모님이 죽음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죽음의 공포나 신체적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특히 아버님의 경우 6년여의 병상 생활(그건 생활이 아니라 생존에 불과했다!) 동안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이 의존상태에서 사시는 것을 보면서 나에게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 인생 여정의 마지막 부분에 고통과 불편함을 비켜갈 수는 없다 할지라도 삶의 한계성과 죽음의 불가피성을 수용하면서 감사함으로 견뎌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 길은 길든 짧든 인간 모두가 거쳐 가는 길이지만, 이렇게 걸어가면 될 거라고 얘기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호스피스 완화의학이 중요한 해답을 줄 수 있지만 그것도 완벽하지는 않다.

최근 웰다잉(well-dying)이 세간의 관심을 끈다.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의 결정이나 가족의 동의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일명 ‘웰다잉법’도 제정된 지 1년이 되었다. 이 법의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의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다. 이 법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를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의 연명의료를 중단하여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법이 나와야 할 만큼 이제 개인의 죽음은 사회문제가 되었다. 사실 어떻게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느냐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나는 최근 발족한 사단법인 웰다잉시민운동에 교육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잘 죽는다’는 뜻의 웰다잉은 ‘잘 산다’는 뜻의 웰빙(well-being)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발달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이 제시한 생성감(generativity)은 생애주기에 있어서 성인이 발달시켜야 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그는 30대 후반 중년기 이후 노년이 되기 전까지 인간은 ‘생성감’이냐 ‘침체감’이냐의 갈림길에 직면한다고 보았다. 생성감이란 원래 후세대를 양육하고 지도하는 일에서 느끼는 보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더 나아가 내가 살아오면서 후손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뭔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 냈다는 자부심을 포함한다. 이 생성감은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서도 유효하게 작동할 것이다. 과거에 내가 세상을 위해 어떤 형식으로든 기여했다는 느낌이 있다면 그 힘든 순간에 다소의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죽음에 관한 질문은 종교에서 더 의미 있는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서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 하였다. 불교에서는 신행의 근본 방식을 신해행증(信解行證)이라 하여 자비와 내가 한 몸처럼 되는 것을 마지막 단계로 보고 있다. 모든 종교는 내세의 희망을 얘기하는데, 내세는 희생적 사랑과 자비를 베푼 자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는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지만, 과거에 내가 실행했던 선행, 즉 베풂, 섬김, 용서에 관한 기억은 인생이 힘들게 마무리되는 시점에 다소 평안함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나는 퇴임 몇 년 전에 사회복지학 전공 학자들과 함께 ‘영성과 사회복지학회’를 만들었다. 인성이 메마른 현대사회에서 영성민감형(spirituality-sensitive) 사회복지사를 육성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특히 노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는 노쇠의 특징인 4D(disease, disability, dementia, dependency: 질병, 장애, 치매, 의존)를 영성의 요소인 4C(connectedness, compassion, creativity, contribution: 연결, 긍휼, 창의, 기여)로 대체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필요가 있다. 외롭고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영성훈련이 꼭 필요하다. 젊어서부터 영성이 풍부한 삶을 살아왔다면 죽음의 문턱, 그 질곡의 시간에 조금은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으리라.  

그러나 젊어서 위와 같은 삶을 아무리 잘 살았다 해도 누가 죽음의 불안과 고통을 완전히 피해갈 수 있단 말인가? 9988234의 삶(99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다 죽는 것)이 되도록 신의 은총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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