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우의 유식한 잡학 왜?
중세 3차 십자군은 영국, 독일, 프랑스의 세 군주가 직접 지휘관으로 출정했다.
특히 독일의 프리드리히 1세는 십만 대군을 이끌고 참전했다. 그러나 그는 아시아의 세우레키아 부근의 개울에 빠져 익사했다. 시신 처리에 고심하던 십자군은 왕의 시신을 대형 가마에 넣고 푹 고아 뼈와 살을 분리한 후 뼈만 씻어 부대에 넣어 고국으로 가져가도록 했다. 나머지는 현지에 묻었다.
당시의 십자군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로 전사자의 시신을 어떻게 가져가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심사숙고 끝에 부대별로 대형 가마를 끌고 가기로 했고, 시신은 고아 뼈만 남겨 귀국할 때 가져갔던 것이다. 비단 프리드리히 1세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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