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인생을 즐기는 유쾌한 어르신들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인생을 즐기는 유쾌한 어르신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3.29 13:21
  • 호수 6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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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쳤어. 정말 미쳤어. 너무 미워서 떠나버렸어…”

지난 3월 24일 방영된 KBS ‘전국노래자랑’ 무대에 오른 한 출연자가 2008년 가수 손담비가 발표한 ‘미쳤어’를 불렀다. 귀여운 안무까지 곁들이며 열창했지만 최우수상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방송이 끝나자마자 이 출연자, 올해 77세 지병수 어르신은 일명 ‘할담비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기스타로 등극했다. 

지 어르신이 부른 ‘미쳤어’는 도발적인 가사와 섹시한 춤이 포인트인 곡으로 웬만한 젊은 사람들도 잘 시도하지 않는 노래다. 특히 남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이런 고난도의 곡을 지 어르신은 손담비 못지않은 요염한 동작으로 소화하면서 큰 웃음과 함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내고 있다. 동년배보다 10~30대 젊은이들에게 더 환호를 받고 있다는 점이 특히 고무적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과 젊은 사람들 사이에는 만리장성에 버금가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져 있다. 정치적으로도 지지하는 당이 극명하게 갈리고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서도 대립각을 세운다. 젊은이들이 노인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틀X’ 같은 용어의 어원을 들여다보면 평생 등을 지고 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현실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되레 환영받는 노인들도 있다.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해진 유튜브 스타 박막례 어르신과 최근 시니어 패셔니스타로 급부상 중인 김칠두(64) 씨가 그렇다. 지 어르신을 포함한 이 분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흔히 아는 노인의 틀을 벗어던졌다는 것이다. 

취업난을 뚫고 겨우 직장에 들어갔어도 박봉에 시달리고 높아진 집값과 결혼비용 덕분에 금수저가 아닌 이상 내집 마련은 꿈도 못 꾸는 수많은 젊은이들은 “우리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기성세대의 훈계에 유독 염증을 느낀다. 충분히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불구하고 마치 너희들이 노력을 하지 않아 그런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에 노인들과의 대화를 원천봉쇄한다. 

이 세 사람은 말 대신 행동으로 젊은 사람들과 소통한다. 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유쾌한 일상을 보여주고, 젊은 모델들과 실력으로 경쟁해 런웨이에 서고, 댄스가수의 노래를 열정적으로 불렀을 뿐이다. 이를 통해 ‘비록 우린 늙었지만 인생을 즐기고 있어, 당신들도 그랬으면 좋겠어’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에게 원하는 것은 조언만이 아니다. 어르신의 나이가 됐을 때 자신들도 인생을 즐길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한다. 보다 많은 노인들이 이에 대한 답을 행동으로 보여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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