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상석의 위치를 달리 생각하자
[백세시대 / 금요칼럼] 상석의 위치를 달리 생각하자
  • 최성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9.03.29 13:29
  • 호수 6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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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사회에서의 상석은

온돌문화의 영향을 받아

‘벽쪽’과 ‘안쪽’을 가리켜

사실 안쪽은 노인에 불편한 자리

현대엔 출입구쪽이 오히려 상석

‘상석(上席)’이라는 말은 권위주의적이고 계급주의적인 이미지를 주는 면이 있지만 우리사회에서 여전히 많이 사용되고 일상생활에서 자주 행동으로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상석’ 이라고 말은 안 하지만 그런 의미를 가지고 공식적인 행사, 회의, 회식, 사교의 자리에는 물론 비공식적 가족, 친인척, 친구, 동창 간의 모임 등에서도 관련된 행동이 많이 나타난다. 주로 직위, 사회적 명망이나 인지도, 그리고 나이가 상석을 정하는 기준이다. 사회가 고령화사회로 진전할수록 나이 많은 사람이 상석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나는 나이 들어가면서 명예 교수, 단체 대표, 연장자 등의 명목으로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 자리에서 상석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러면서 나는 그 상석이 우선 내게 불편한 경우를 많이 느끼게 되었다. 많은 경우 좁은 회의장소나 식당 같은 곳에서 상석은 ‘안쪽’ 그리고 ‘벽 쪽’으로 정하는데 대해 약간은 불편하고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상석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 존경, 우대, 예절의 좋은 의미를 갖고 거기에 걸맞는 물리적 조건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행동의 표시이다. 그런데 그 상석은 전통적으로 ‘아랫목’이라는 생각이 크게 배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온돌문화가 일반화된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아랫목은 따뜻하고 출입문에서 멀고 벽이 있는 아래쪽과 안쪽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이야기 편의를 위해 이러한 의미의 상석을 ‘전통적 상석’으로 표현). 그런데 현대사회에는 계절에 관계없이 건물이나 개인 주택 또는 식당 등의 서비스 장소는 온도가 대체로 쾌적하게 조정되기 때문에 아랫목의 가치는 거의 없어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상석의 개념(여기서는 ‘현대적 상석’이라 함)은 달리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즉 현대사회에서의 새로운 개념의 상석은 신체적 조건과 환경적 위험 요인을 생각하여 결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현대적 상석을 정하는 기준을 (1) 대상자의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상태, (2) 신체적 안전성, (3) 이동의 편의성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전통사회의 온돌식 난방의 생활양식에서는 따뜻한 바닥의 아랫목은 중요한 상석의 기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현대사회로 오면서 주거양식과 더불어 난방 방식은 바닥 전체가 고른 온도가 되게 하거나 더운 공기로 난방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왔다. 또한 이와 더불어 침대생활과 의자(소파 등)에 앉는 것이 보다 일반화되고는 있다. 의자에 앉는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바닥에 앉는 것이 점점 더 불편해진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 골 관절 기능이 약해져 다리를 접고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때로는 상당한 고통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같은 자세로 오래 바닥에 앉기가 더 어려워져 자세를 바꾸거나 의자에 앉더라도 앞뒤로 약간씩 움직일 필요도 있고, 화장실을 더 자주 가야할 경우도 많아진다. 그렇다면 안쪽과 벽 쪽의 자리는 신체적 조건이 불리한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자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출입문에 더 가까운 쪽(이하 ‘문 쪽’이라) 자리가 상석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사회에서도 사고와 재난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지만 우리사회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안전사고가 훨씬 더 많이 일어나고 있다. 여러 가지 법규로 안전사고 예방과 유의사항을 강조하고 있지만 행동으로의 실천에서는 ‘안전 불감증’이 좀처럼 고쳐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항상 건물 밖으로 빨리 나갈 수 있는 위치에 앉는 것이 생명을 지키는데 대단히 중요하고 훨씬 더 배려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출입문 쪽 또는 출입문 가까운 자리가 좀 더 안전한 자리이므로 상석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안쪽과 벽 쪽은 드나드는 통로가 좁거나 긴 의자(특히 대중음식점에서는 좌석 구분 없이 길게 마련된 자리는 거의 전부 벽에 붙여 놓음)를 많이 설치하여 드나들기에 상당히 불편하고 비상시에 움직이는데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드나들기 편하고 의자의 움직임도 쉽고, 앉는 자세 변화도 비교적 쉽고, 바닥 자리에 오래 앉아 다리가 아플 때 뒤로 물러서서 다리를 잠시라도 뻗을 수 있는 출입문 쪽 자리가 훨씬 편리한 자리이므로 상석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이는 동시에 신체적 조건을 대체적으로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100세까지 생존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고령화사회에서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하거나 사회 활동을 하거나 가족들과의 나들이나 외식의 기회가 많아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적 의미의 상석의 기준 즉 아랫목 기준은 현대사회에서는 합리적이 되기 어려우므로 신체적 조건, 안전성, 편의성을 상석의 새로운 기준으로 삼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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