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이스’, 미 역사상 가장 강한 부통령 이야기
영화 ‘바이스’, 미 역사상 가장 강한 부통령 이야기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3.29 13:43
  • 호수 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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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정권의 실세 딕 체니 일대기 풍자한 블랙코미디

“따뜻한 오줌 한 양동이의 가치도 없다(Not worth a bucket of warm piss).”

제32대 미국 부통령이었던 존 낸스 가너(1868~1967). 그는 대통령 궐위 시 승계서열 1순위라는 점을 제외하면 아무 권한이 없는 ‘바이스 프레지던트’(Vice-president) 즉, 부통령의 직책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의 말처럼 적어도 2000년까진 미국의 부통령은 있으나 마나한 자리였다. 2001년 ‘아들 부시’ 대통령의 파트너로 한때 하원의장을 지낸 딕 체니가 부통령으로 등판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것으로 평가받는 딕 체니 제46대 부통령의 전기를 다룬 영화 ‘바이스’가 4월 11일 개봉한다. 이번 작품은 전기영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실상은 딕 체니를 중심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빙자해 온갖 추악한 짓을 자행한 아들 부시 정권을 비판하는 블랙코미디극이다. 

딕 체니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미국 명문 예일대학교에 입학하지만 적응을 못해 중퇴하고 고향인 와이오밍 주에 내려와 전선 설비공으로 일하면서 술독에 빠져 ‘밥버러지’처럼 살아간다. 그러다 평생의 반려자 ‘린’을 만나 정신을 차린 그는 와이오밍 대학교 정치학과에 다시 진학해 최연소 백악관 수석 보좌관 등 정치 엘리트의 길을 걷는다. 

체니의 정치 인생은 크게 미 의회 인턴에서 출발 ‘아버지 부시’ 밑에서 국방부장관까지 오르며 정점을 찍은 1기와 ‘아들 부시’의 파트너로 전횡을 저질렀던 2기로 나눌 수 있다. 

영화 전반부는 체니가 권력에 서서히 눈을 떠가는 과정을 그린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과 아들 부시 대통령 시절 두 차례나 국방부장관을 지낸 공화당 도널드 럼스펠드 밑에 있을 때만 해도 그는 ‘정치인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순수한 철학을 가진 인물이었다. 하지만 수석 보좌관과 하원의원을 거쳐 마침내 서열 6위인 국방부장관까지 오르면서 권력의 최정점에 서고 싶다는 욕망을 키워간다. 하지만 그에게는 보수정치인으로선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둘째 딸 메리가 동성애자였던 것이다. 결국 가족을 위해 정계를 떠난 그는 세계 최대 석유 기업 ‘핼리 버튼’의 사장에 취임한다. 

술주정뱅이에서 대기업 CEO로 행복하게 마무리될 줄 알았던 그의 인생은 아들 부시가 손을 내밀면서 2기에 접어든다. 처음에 부통령 자리를 단호하게 거절했던 체니는 부시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고 그가 이를 받아들이자 미국의 민주주의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결정을 내리며 세계를 혼돈에 빠트린다.   

미국 백악관의 추악한 이면을 다룬 내용과 달리 작품은 시종일관 경쾌하게 진행된다. 기존 영화 문법을 무시한 채 자유자재로 장면을 전환하는 아담 맥케이 감독의 연출 덕분인지 2시간 20분의 상영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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