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김영철과 ‘사 딸라’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김영철과 ‘사 딸라’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4.05 11:19
  • 호수 66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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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동안 외모를 간직한 배우 김영철(66). 그는 지난해 단 한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찍지 않고도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달리고 있다.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를 통해 지역 특유의 매력을 간직한 동네를 소개하며 호평을 받고 있지만 프로그램의 폭발력은 그리 크지 않다.

동년배 탤런트들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와중에 그는 10대들에게도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인기스타의 척도인 햄버거와 아이스크림 광고모델로도 기용되고 있다. 그가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건 다름 아닌 2002년부터 이듬해까지 방영된 SBS ‘야인시대’에서 연기한 김두한 덕분이다. 그가 연기한 김두한은 극중 한국전쟁 당시 1달러라는 저임금으로 미국의 군수물자를 운반하던 한국인들이 파업을 하자 이들을 대신해 미군과 협상에 나선다. 이때 그는 단호하고도 당당하게 ‘포 달러’가 아닌 ‘사 딸라’를 외치며 파격적인 인상을 주도한다. 

이 장면이 각종 인터넷에서 패러디되면서 그는 단숨에 잊혀져가는 스타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 김영철은 또 야인시대에 앞서 출연한 그의 불세출의 대표작 ‘태조 왕건’에서도 현재까지 인기를 끄는 유행어를 가지고 있다. 궁예를 연기하던 그는 관심법을 쓰던 중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라는 대사를 내뱉었다. 이는 역시 다양한 형태로 패러디되며 20년 가까이 인기를 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병헌과 함께 출연했던 2005년작 ‘달콤한 인생’에서 희대의 유행어를 남긴다. 조직보스로 출연하는 그는 자신의 오른팔 이병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고 영화 말미에 다시 마주친다. 왜 자기를 죽이려고 했느냐는 이병헌의 물음에 그는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대사를 내뱉는다. 이 역시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패러디고 있다. 

유행어의 생명력은 짧은 편이다. 길어야 1년을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철의 입에서 탄생한 3개의 유행어는 10년 넘게 사랑받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배우가 같은 대사를 내뱉었어도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런 영향력을 가진 원숙한 배우들이 점점 브라운관에서 멀어지다는 점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연기를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경력이 오래된 배우들이 대부분 안정적이고 감동적인 연기를 펼친다. 이순을 앞둔 최수종이 좋은 예다.

더구나 현재 수준 미달의 배우들이 주요 배역을 도맡는 현실은 부적절해 보인다. 적어도 김영철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는 ‘발연기’라는 말은 없었다. 김영철 같은 원숙한 명배우들을 좀더 오래볼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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