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부부(夫婦)
[디카시 산책] 부부(夫婦)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9.05.03 14:30
  • 호수 66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부(夫婦)

같은 방향, 같은 눈높이, 같은 속도

비 오나, 눈 오나, 바람 불거나 

구만 리 장천 함께 간다


문정희 시인은 ‘남편’이라는 시에서 남편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버지와 오빠 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지만 ‘내게 잠 못 이루는 연애가 생기면 제일 먼저 의논하고 물어보고 싶다가도 아차, 다 되어도 이것만은 안 되지 하고 돌아누워 버리는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그리고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라고. 아내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어머니와 누이 사이의 촌수쯤 되지만 여전히 속을 알 수 없을 때가 있고, 아무리 함께 밥을 가장 많이 먹어도 어떤 때는 세상 그 누구보다 멀게 느껴지는 그런 사이. 남편과 아내라는 그 사이는 여전히 정의하기 어렵다. 

그런데 저 해오라기를 보면 부부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함께 같은 방향을 향해 쉬지 않고 같은 속도로 같은 높이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굴하지 않고 일생을 함께 가는 사이. 그 먼 길을 가려면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고 서로를 한없이 믿어야 한다. 부부란 자신의 전 생애를 맡기는 그런 사이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