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나는 사람이 더 좋다
[백세시대 / 금요칼럼] 나는 사람이 더 좋다
  •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
  • 승인 2019.05.03 14:32
  • 호수 6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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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소개된 맛집에 찾아갔더니

주차에서 음식 주문까지 

모두 무인 시스템 거쳐야 가능

‘최첨단 스마트’라 자랑하지만

인간미 없고 삭막하기만 해

누가 눈이 보배라 했던가. 갑자기 바지락손칼국수가 미치도록 먹고 싶어졌다. TV ‘맛집 코너’에서 어찌나 맛깔스럽게 보여주던지. 내친김에 차를 타고 그 집을 찾아갔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가. 그다지 붐비지는 않는다. 주차장이 앞 건물지하라는 사인이 있어서 건너편에 있는 주차타워 건물로 들어갔다.

사람은 없고 내 차가 지나가니 주차 게이트가 저절로 열린다.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 주위의 도움을 구하고자 했지만,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그저 오가는 차들만 북적인다. 내 뒤로 줄줄이 차들이 따라와서 차를 세우고 물어볼 수도 없다.

차 문을 열고 주차권을 못 받았다고 묻고자 했지만 다들 문을 꼭꼭 닫은 채 차 안에서 뭘 하는지 나를 쳐다봐 주지도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빈 곳에 차를 세우고 앞집 바지락손칼국수 집으로 들어갔다. 

손님을 반겨야 할 사람 대신 턱 하니 기계가 놓여 있다. 이건 또 뭔가. 이게 바로 그 ‘키오스크’라 하는 무인결제 시스템인가 보다. 이리저리 스크린 속에서 헤매다가 간신히 칼국수를 시키고 결제하고 차량번호까지 입력시키고 나니, 대기자 12명, 예상 대기시간 25분이라 적힌 영수증 같은 게 나온다. 

기다리는 사람이 한두 명밖에 없던데 나머진 다 어디 간 건가. 근처를 돌아다니며 기다리다가 시간 맞춰 식당에 갔다. 번호를 불러 들어갔더니 앉자마자 먹음직한 칼국수가 나온다. 수저는 식탁에 붙어있는 서랍에 있고 물과 김치는 셀프란다. 혼자 수저 꺼내고 김치 덜어오고 물 떠와서 칼국수를 입에 넣으니 맛이 2% 부족하다. 

주차부터 기다림부터 셀프 물에다 김치까지…. 고생해서 그런가. 어쩌면 손칼국수에서 제일 중요한 ‘손’맛이 빠져서 그런가 보다. 국수만 손으로 잘랐다고 다 손칼국수인가, 안내도 손으로 하고 주문서도 손으로 적고 물도 김치도 수저도 직접 손으로 다 가져다줘야 손칼국수지.

씁쓸한 마음으로 차를 빼서 나오는데 내차 번호를 인식한 주차 게이트가 저절로 열린다. 언제 칼국수 집까지 이렇게 바뀌었나. 이런 첨단기술이 놀랍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그런데 좀 차갑다. 

집 떠날 때 주소를 핸드폰에 입력한 후 컴퓨터가 시키는 대로 왔고, 고속도로 비용도 하이패스를 거쳐 컴퓨터로 지불했고, 주차도, 음식 주문도, 주차 비용도, 다 컴퓨터가 해주었다. 머지않아 손님이 식탁에 앉자마자 물, 김치, 수저 등도 컴퓨터가 다 가져다주게 될 게다.

기분 좀 바꿔보려고 서울 외식 나들이 갔다가 기분이 더 다운되어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니 강아지들이 반갑다고 이리저리 짖어대며 난리다. 반갑다고 짖어대는 ‘컹컹’ 개소리가, 컴퓨터 기계음의 ‘반갑습니다. 고객님’보다, 나를 더 반기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며칠 전에는 인터넷으로 개밥을 사려다가 정말 개고생했다. 그까짓 것 하나 사는데 내 모든 정보를 다 까발려서 알려주고 회원가입까지 해야 한다는데. 열심히 작성하다 뭐 하나 잘못되면 다 지워져서 처음부터 되풀이하기를 몇 번. 비밀번호는 뭐가 그리 까다로운지. 숫자랑 대문자랑 고루 섞어 만들어야 한다는데 내가 만들고도 벌써 그 비밀번호를 까먹었다. 

공기청정기 필터 주문도 그랬다. 예전엔 전화만 걸면 친절하게 사람이 직접 가져와 필터까지 바꿔주더니만, 전화를 건 지 20분이 넘도록 사람 목소리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다시 듣고 싶으면 2번을…’이란 멘트대로 2번만 계속 누르다가 그만 포기해 버렸다.

관둬라. 깨끗한 공기 마시려다 화병 나면 더 큰 일이다. 요즘. 뭘 물어보려 전화를 해도 사람 목소리 듣기 하늘의 별 따기다. 그나마 아직 전화번호를 묻는 114는 금방 사람으로 연결이 된다. 하지만 ‘찾으시는 번호가 서울이면 1번, 경기도는 2번.. 상호이름이 기역이면 1번, 니은이면 2번을…’ 이런 기계음이 사람 목소리를 대신할 날도 머지않았다.

무인시스템. 겉으로는 ‘최첨단 스마트’ 서비스라고 포장하며 자랑하지만 실은 인건비 절감이 목적인 게다. 어쨌거나 나는, 똑똑한 인공지능이 해주는 완벽한 서비스보다는, 좀 모자라고 실수도 하고 인간 냄새 풀풀 나는 진짜 인간의 서비스가 더 좋다. 앞으로는 그런 인간 서비스를 받으려면 돈을 더 내라고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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