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97] 술에 대한 경계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97] 술에 대한 경계
  • 권헌준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 승인 2019.05.10 13:11
  • 호수 6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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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대한 경계

아! 술이여, 사람에게 화를 끼침이 혹독하구나

嗟哉麴糱(차재국얼)   禍人之酷(화인지혹)

- 이황(李滉, 1501~1570), 『퇴계집(退溪集)』 제 44권 「주계 증김응순(酒誡 贈金應順)」


이 글은 퇴계가 문인인 김명원(金命元,1534~1602)에게 준 잠명(箴銘)의 첫 구입니다. 잠명은 자신과 타인에 대하여 경계할 만한 내용을 담은 글로, 이 잠명은 첫 구부터 제자를 경각시켜 바른 데로 이끌려는 스승의 뜻이 간절합니다. 이에 전문을 소개합니다.

아! 술이여, 사람에게 화를 끼침이 혹독하도다. 장기를 상하게 하고 병을 일으키며 본성을 흐리게 하고 덕을 잃게 하네. 자신에 있어서는 몸을 상하게 하고 나라에 있어서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구나. 나는 그 독을 맛보았거니 그대는 술의 함정에 빠졌구나. 〈억(抑)〉편에서 경계하였으니 어찌 함께 힘쓰지 않겠는가. 굳세게 자제하여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라.[嗟哉麴糱 禍人之酷 腐腸生疾 迷性失德 在身戕身 在國覆國 我嘗其毒 子阽其窖 抑之有誡 胡不共勖 剛以制之 自求多福] 

〈억(抑)〉편은 《시경(詩經)》 〈대아(大雅)〉의 편명으로 춘추시대(春秋時代) 위(衛)나라 무공(武公)이 95세에 스스로 경계하면서 지은 시인데 내용 중에 술에 대한 경계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김명원이 이 잠명을 받은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두 분의 생몰년을 비교해 보면 김명원이 35세가 되기 전인 듯합니다. 스승은 술을 즐기는 젊은 제자에게 엄한 훈계를 내렸고, 제자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스승의 훈계를 깊이 가슴에 새겨 실천한 듯합니다. 그러기에 뒷날 정여립(鄭汝立)의 난과 임진왜란을 극복하는 데 큰 공을 세우고 좌의정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은 누구나 술로 인한 한두 가지 좋지 않은 기억은 다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퇴계의 훈계는 오늘날에도 유효합니다. 그러나 다양한 사회생활 속에서 금주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을 망치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절제하는 것 또한 선현의 훈계를 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5월은 은혜의 달입니다. 은혜를 은혜인 줄 알고 자신의 복을 짓는 일에 한 걸음 다가설 줄 안다면, 스승이 내린 은혜는 이미 깊은 것임을 퇴계와 제자 사이에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권 헌 준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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