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선진사회 노인 주거의 방향
[백세시대 / 금요칼럼] 선진사회 노인 주거의 방향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19.05.10 14:10
  • 호수 6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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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치매 환자에 대한 돌봄을

가족에만 맡기는 건 현실성 없어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살던 곳에서 노인을 돌본다면

선진사회라 부를 수 있을 것

에피소드 #1. 내가 대학에 재임하던 시절 야간 대학원 노인복지론 수업에서 50대 중반의 어느 여학생이 노인요양보호에 관하여 발제를 하였다. 그는 남편과 함께 꽤 큰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사업상 바쁜 일이 많지만 몸이 불편하신 시아버지를 집에서 모시고 살았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모시지 않는 이유는 결혼하면서부터 시아버지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 하였다. 집에서 모시면서 수발해 드리는 게 힘들긴 하지만 그동안 시아버지로부터 받은 큰 사랑을 생각하면 작은 보답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면서 눈시울을 적실 때 수강생 모두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시아버지가 가끔 자기에게 고맙다고 말할 때 고생하는 보람을 느끼며, 돌아가실 때까지 추호도 흔들림 없이 집에서 모시기로 다짐하였단다. 남편도 자기의 효성에 감사하고 있다고 하였다.

에피소드 #2. 최근 서울 용산구가 경기도 양주시에 건립 중인 대지 3500평, 입소정원 120명의 마을형 치매 전담 노인요양시설이 지역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시설은 치매환자의 존엄성을 고려하여 요양원을 일반 가정집처럼 꾸며 사생활을 최대한 보장하고, 옥외공간은 운동장과 텃밭을 갖춰 환자들이 자연과 함께 하며 이웃과 교류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 이 시설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 호그벡의 치매마을을 본떠서 설계하였다. 호그벡 마을에서는 150여명의 환자가 평범한 일상생활을 누린다.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미용실에 가기도 하며 주말에는 교회에도 간다. 잔디밭을 산책하거나 분수 주변의 벤치에 앉아 쉬기도 한다.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가 마트 계산원, 환경미화원, 우체부 등의 복장을 하고 곳곳에 배치돼 이들을 24시간 보호한다. 이 마을에 사는 환자들은 일반 치매환자들보다 약 복용량이 적고 더 장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에피소드 #3. 경북에는 2019년 현재 25개의 ‘치매보듬마을’이 운영 중에 있다. 정부는 2008년 ‘치매와의 전쟁’, 2017년 ‘치매국가책임제’를 선포한 이후 치매관리 종합계획의 일환으로 치매안심마을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이 마을은 치매환자나 인지 저하자가 자신이 살던 동네에서 가족과 이웃의 관심과 돌봄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치매친화적 공동체이다. 치매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치매환자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인이 많이 사는 마을의 마을회관을 개조하여 주민교육이나 치매진단을 하고 전문가에 의한 치료 서비스도 제공한다. 마을 각 상점에 치매 관련 안내문도 부착하여 마을을 구심점으로 한 치매 지원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농어촌 지역에서 빠르게 증가하는 치매환자의 부양부담을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예방과 치료 차원의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다. 이러한 치매안심마을은 전국으로 확대되는 추세에 있다. 

늙어서 질병을 얻거나 거동이 불편해지면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한다. 가족의 보살핌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고령으로 인해 신체적 자립이 어려운 경우 양로시설에의 입소는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특히 중중 치매환자의 경우 가족이 보살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2008년부터 실시된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의해 가족에 의해 보살핌을 받기 어려운 많은 노인들이 요양시설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낸다. 형태와 서비스 질에 있어서 여러 가지가 있지만, 특수한 몇몇 곳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노인요양시설은 한마디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합소’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위 3개의 에피소드는 노인 돌봄에 있어서 비교적 긍정적인 케이스들이다. 에피소드 #1의 경우처럼 효성이 지극한 자녀로부터의 돌봄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에피소드 #2나 #3의 경우처럼 지역사회와 정부는 질 좋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병약한 노인의 주거 문제는 이제 노인의 인권적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만큼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인권을 중시하는 나라들을 본받아, 정부는 얼마 전 ‘지역사회 통합 돌봄 기본계획’, 일명 ‘노인 커뮤니티 케어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이는 주거 지원, 방문 건강관리 및 방문 의료, 재가 요양 및 돌봄 서비스 등을 제공해 노인이 요양병원이나 요양시설에 들어가는 대신 살던 곳에서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복지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안심하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갖춘 사회, 우리는 이런 사회를 선진사회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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