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미술관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 전…예술과 디자인 경계 허문 스페인 최고 스타작가
대림미술관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 전…예술과 디자인 경계 허문 스페인 최고 스타작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5.10 14:19
  • 호수 6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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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수공예의 아름다움을 디자인에 접목… 전통과 현대의 조화 이뤄내

트라팔가 해전을 체스로 재현한 작품과 ‘크리스털 캔디 세트’ 등 눈길

하이메 아욘이 자신의 작품인 ‘그린치킨(Green chicken)’을 타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하이메 아욘이 자신의 작품인 ‘그린치킨(Green chicken)’을 타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2009년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는 1805년 벌어진 영국과 프랑스·스페인 연합군의 ‘트라팔가 해전’을 소재로 한 ‘토너먼트(The Tournament)’라는 작품이 공개된다. 이탈리아 유명 세라믹 브랜드의 장인들과 함께 사람 크기 만한 체스말 32개를 만든 후, 각각의 말에 직접 그림을 그려 넣고 바퀴를 달아 관객들이 체스게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이 토너먼트가 당시 패전국이었던 스페인 출신 하이메 아욘(45)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은 것과 달리 정작 조국에서는 혹평을 받게 된다.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주제와 표현방식은 개의치 않는다는 그의 예술세계를 잘 보여준 사례다. 

스페인의 스타 디자이너이자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깨고 있는 작가라는 평을 받는 하이메 아욘의 첫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11월 17일까지 진행되는 ‘하이메 아욘, 숨겨진 일곱 가지 사연’ 전에서는 디자인, 가구, 회화, 조각, 스케치부터 특별 제작된 대형 설치 작품까지 14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하이메 아욘은 타임 등 세계 유수의 매체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크리에이터이다. 그는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한 후 의류회사 베네통의 디자인 연구센터인 ‘파브리카’에 입사하면서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사진·영상·그래픽·디자인·패션·음악 등 분야 간 융합을 중시하는 파브리카의 철학은 틀에 얽매이지 않는 아욘의 작품 세계와 일맥상통한다. 

2001년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고 가구회사인 BD바르셀로나와 프리츠 한센, 크리스털 회사 바카라 등과 협업해 욕실 용품이나 조명 등 기타 생활용품들을 선보이면서 바람을 일으켰다. 영국 데이비드 길 갤러리, 네덜란드 그로닝거 미술관 등에서도 전시를 열었고 엘르 데코, 아키텍처 다이제스트 등이 개최한 국제 대회에서 수상했다. 2014년에는 미국 타임이 선정한 ‘가장 창의적인 인물’로 뽑혔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먼저 열대과일에서 착안한 ‘크리스털 캔디 세트’(Crystal Candy Set)가 관람객을 맞는다. 언뜻 보석처럼 보이는 이 작품들에는 파인애플, 석류, 골프 공 같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의 형태가 담겨 있다. 프랑스의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Baccarat)와 협업한 작품으로 크리스털(수정)에 세라믹(자기)과 같은 이질적인 소재를 더해 열대 과일의 영롱함을 표현했다.

아프리카의 전통 마스크와 의복 등의 강렬한 장식 미술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된 7개의 유리 화병으로 구성된 아프리칸도(Afrikando) 시리즈도 인상적이다. 유리와 대리석의 대비, 반투명과 불투명의 대비, 빛과 컬러가 만들어 낸 대비 등 상반된 요소들을 조화롭게 매치시켰다. 작가 특유의 유쾌함으로 주제를 풀어내 지역 간, 문화 간, 전통과 현대 사이에 서로를 보완하며 조화를 이뤄낸 의미 있는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아프리카의 전통 가면과 의복 등에서 영감을 받은 유리 화병 ‘아프리칸도’(Afrikando).
아프리카의 전통 가면과 의복 등에서 영감을 받은 유리 화병 ‘아프리칸도’(Afrikando).

곡예 하듯 자유로운 곡선 형태의 화병, 물결처럼 재단한 상판에 각기 다른 모양의 다리를 결합한 테이블 인 몬 서크(Mon Cirque)는 예술성과 기능성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다. 아욘은 수공예의 가치를 디자인에 접목함으로써 공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혁신적인 디자이너로 인정받았다.

16세기 유럽의 전시 공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수상한 캐비닛’(Ca binet of Wonders)과 하이메 아욘의 가구들이 탄생한 사연을 들려주는 ‘가구가 반짝이는 푸른 밤’(Furniture Galaxy)은 디자인이란 사용자의 감성을 건드리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 말하는 철학을 보여준다. 

하이라이트는 대림미술관 전시를 위해 제작한 그림자 극장 ‘아욘 쉐도우 씨어터’다. 작가의 스케치북에 살고 있던 캐릭터가 실제로 생명을 얻게 되는 환상을 담고 있다. 대형 오브제를 관통하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캐릭터가 살아나며, 관객은 이 오브제 사이를 거닐면서 한 편의 그림자연극을 감상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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