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문화이야기] 지나친 ‘올바름’ 강요는 독이 된다
[백세시대/ 문화이야기] 지나친 ‘올바름’ 강요는 독이 된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5.17 13:43
  • 호수 6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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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세계 문화계는 ‘PC’를 어떻게 반영하냐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르신들은 PC라는 단어를 보면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를 떠올릴 수 있지만 여기서 PC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으로 모든 종류의 편견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사회적 운동이다. 

PC운동은 문화상대주의와 다문화주의를 사상적 배경으로 삼아 인종, 성, 성적 지향, 종교, 직업 등에 대한 차별이 느껴질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더불어 차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맨(man)은 남자를 뜻하는 말이기에 여성에게 불편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폴리스맨보다는 폴리스 오피서, 세일즈맨(외판원)은 세일즈 퍼슨, 체어맨(회장)은 체어 퍼슨 등으로 부르는 것이 보다 평등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향이 사회‧문화계에 과도하게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인기 전쟁게임 ‘배틀필드5’ 사건을 들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게임에서 PC에 몰입한 개발자는 의수를 차고도 전장을 종횡무진 하는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다. 2차 대전 당시 여성들도 전장에 투입됐지만 극히 일부인데다가 병과도 제한돼 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가장 치열했던 전투엔 거의 대부분 남성 군인들뿐이었다. 역사적 고증이 핵심인 게임에서 이러한 점을 무시한 것은 문제가 아니냐 팬들이 지적하자 개발자는 되레 ‘못배운 사람들’이란 원색적인 비난으로 대응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완전히 망했다.

반대로 PC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작품들도 뭇매를 맞고 있다. 지나치게 여성을 약하고 의존적으로 그리거나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희화화하는 경향이 강하면 거센 비판을 받는다. 

반강제적으로 사회가 PC를 강요하면서 상당수의 창작자들이 사실상의 검열이나 마찬가지라며 고통을 토로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대중의 평가가 바로바로 반영이 돼 흥행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화나 소설, 만화 등은 현실을 반영한다고 한다. 하지만 명백히 허구의 세상이다. 속된 말로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현실에서 통용되는 기준을 지나치게 이 가짜 세계에 반영할 필요는 없다. 영화 ‘극한직업’을 보고 경찰이 근무시간에 닭을 팔아 부당이득을 챙겼다고 고발하는 사람이 없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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