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그림자 나무
[디카시 산책] 그림자 나무
  • 글‧그림=김성환
  • 승인 2019.05.17 14:00
  • 호수 6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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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나무

나는 해를 받아먹는 나무

한 알의 캄캄한 슬픔을 잉태하지

 

당신의 흰 그늘 속으로 

그리운 것들은 차올라서 

최후의 꽃이 피지


그림자는 햇빛이 강할수록 선명해진다. 한 그루 나무가 내리쬐는 햇볕을 받아 짙은 그늘을 만들어내고 그것은 마치 살아 움직이듯 선명하고 강렬하다. 캄캄한 슬픔을 잉태한 나무와 그림자는 햇살의 이종교배종인 셈인데, 땅에 비친 검은 그림자 사이사이에 비친 흰 그늘은 마치 그리운 것들이 들어차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숭어리숭어리 핀 꽃송이 같은 착시 현상이 기분 좋은 상상력을 가져온다. 저 석류나무에 꽃이 피고 보석처럼 알알이 석류가 익어갈 때쯤이면 하얗게 차오르던 그리운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캄캄한 슬픔은 환희의 송가로 바뀔 것이다. 

송나라의 시인 왕안석(王安石)은 석류를 “만록총중홍일점(萬綠叢中紅一點), 동인춘색불수다(動人春色不須多)”(온통 푸른 잎사귀 가운데 피어난 한 송이 붉은 꽃, 사람 마음 들뜨게 하는 봄빛은 꼭 많을 필요가 없네)라고 노래했다. 오늘날 ‘홍일점’(紅一點)의 어원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석류는 다산(多産)의 의미와 함께 옛 여인들의 신변 잡품에 다양하게 쓰였다. 여섯 개의 방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석류알은 보는 것만으로도 온 마음을 다 홀리고도 남는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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