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도심거리는 하얀 이팝나무꽃 물결
요즘 도심거리는 하얀 이팝나무꽃 물결
  • 김순근 기자
  • 승인 2019.05.17 14:21
  • 호수 67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꽃이 쌀밥처럼 생긴 이팝나무. 도로양쪽에서 무리지어 꽃을 피우면 마치 ‘눈꽃터널’처럼 보인다.
꽃이 쌀밥처럼 생긴 이팝나무. 도로양쪽에서 무리지어 꽃을 피우면 마치 ‘눈꽃터널’처럼 보인다.

꽃이 쌀밥처럼 생겼다고 ‘이팝나무’로 불려

열매 악취나는 은행나무 대체할 가로수로 각광

5월의 도심 거리를 화사하게 수놓는 나무가 있다. 멀리서보면 밀가루를 뒤집어쓴 듯 하얗게 핀 꽃이 강렬한 햇빛에 더욱 눈부시다. 너무 빨리 끝난 4월 벚꽃엔딩의 아쉬움을 달래주어 ‘5월의 벚꽃’으로도 불리는 이팝나무 이야기다 . 

옛날에는 산이나 시골 마을 어귀 등에서 간간히 볼수 있는 나무였지만 요즘은 도시 거리에서도 쉽게 볼수 있다.

가로수중 절대강자인 은행나무가 열매의 꼬리꼬리한 냄새로 점점 비호감이 되면서 대체용으로 이팝나무를 다투어 심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2004년까지 거리에 단 한그루도 없었던 이팝나무가 2017년에는 1만6000여그루로 급증했다. 반면 당시 11만7000그루였던 은행나무는 2017년말 5000그루가 줄었다. 여전히 은행나무가 서울 가로수 1위지만 순식간에 5위에 올라선 이팝나무의 증가속도로 볼 때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가로수를 평정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이팝나무가 가로수로 인기를 끄는 것은 공해 및 병해충에 강한데다 꽃가루 피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팝나무’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절기상 입하(立夏)가 지나면서 꽃을 피워 입하목(立夏木)으로 불리다 이팝나무가 됐다고도 하고, 꽃이 마치 쌀밥처럼 생겨 ‘이밥(쌀밥)나무’로 불리다가 이팝나무가 됐다는 설도 있다. 

이팝나무의 학명 ‘치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a)’가 ‘하얀 눈꽃’을 의미하듯 그 화사함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배고픈 서민의 애환도 깃들여 있다. 

꽃이 피는 5~6월은 보리 추수를 앞두고 먹을 것이 바닥나는 ‘보릿고개’ 시기에 해당한다. 

수령이 오래된 이팝나무에 하얀 꽃이 피면 마치 큰 사발에 쌀밥이 수북이 담긴 것처럼 보인다. 보릿고개 시절, 물로 허기를 달래던 서민들이 이팝나무 꽃을 보면 즐거운 상상에 빠질만 하다. 

더 애절한 사연이 전해오고 있다. 아주 옛날 거듭된 흉년에 보릿고개까지 겹쳐 굶는 이들이 속출했다. 젖을 갓 뗀 어린 아이가 밥을 달라고 보채자 엄마는 빈 젖을 물리며 달래보지만 결국 굶어죽는다. 엄마는 아이를 땅에 묻고서 그 앞에 이팝나무 한그루를 심었다. 생전 구경 못한 쌀밥, 눈으로라도 실컷 먹으라는 애틋한 모정이다. 이팝나무가 많은 동네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이팝나무가 도심의 가로수로 돌아와 삶의 무게감에 짓눌린 오늘날 서민들에게 이색 볼거리를 제공하며 또 다른 위안을 안겨주고 있다.    김순근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