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가족 호칭문제, 정부가 나설 일인가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가족 호칭문제, 정부가 나설 일인가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5.24 13:21
  • 호수 6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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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헛돈 쓴다.”

올해 초 여가부가 2019년 건강가정 기본계획 발표하면서 결혼 후 성별 비대칭적 가족호칭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한다는 소식을 듣고 자연스레 입에서 새어나온 말이다. 여가부 주장에 따르면 남편 동생은 도련님 혹은 아가씨로 부르고, 부인 동생은 처남 혹은 처제로 부르는 것이 남성 중심 가부장제의 잔재라는 것이다. 

실제로 여가부는 지난 5월 15일 서울지방조달청에서 ‘가족 호칭 토론회’를 개최하고 어떻게 개선할지 청사진을 제시했다. 토론회에서 나온 내용을 들여다보면서 또 이런 말이 새어나왔다. 

“역시나 헛돈 썼군.”

가족 간 호칭을 쓰는 경우는 두 가지다. 당사자가 서로를 부를 때, 그리고 타인에게 나와 가족 간의 관계를 설명할 때다. 여기서 당사자가 서로를 부를 때 호칭 문제는 국가에서 간섭할 게 아니다. 정식 호칭이 있다 해도 얼마든지 묵시적 합의에 의해서 자연스레 바뀌고 정착된다. 필자의 경우 ‘장모님’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아내 역시 ‘시어머니’라고 필자의 어머니에게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어머님, 엄마, 어머니’ 중 상황에 맞춰서 골라 부른다. 명확히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자기 어머니’라고 부른다.  

아내가 외할머니를 부를 때도 마찬가지. 늘 할머니라고 했다. 그래서 연애시절 할머니를 만나러 간다고 하면 ‘친할머니’인 줄 알았다. 처형의 아이, 즉 처조카 역시 외할머니를 ‘증조외할머니’라 부르지 않는다. 그냥 할머니라고 부른다. 

타인에게 나와 가족 간의 관계를 설명할 때도 마찬가지. 현재 젊은이들은 호칭을 잘 모르고 외울 생각도 없다. 올케라는 말이 생각 안 나면 ‘오빠 부인’, ‘동생 부인’이라고 ‘알아서’ 잘 부른다. 정 필요하다면 검색하면 된다. 이들이 노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호칭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여가부는 토론회에서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서 실시한 ‘가족호칭 사례 공모전’에 응모한 사례를 발표했는데 역시나 실소를 자아낸다. 응모작 중에는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가 발음이 힘들다며 최고할아버지, 최고할머니라고 부르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앞서 말했듯 당사자는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한다. 남에게는 그냥 할머니의 엄마, 할아버지의 아빠로 설명하면 되고. 

여가부는 이제라도 호칭 문제는 접고 진짜 필요한 곳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예산을 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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