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북에 쌀 지원하면 비핵화 늦어진다”
[백세시대 / 세상읽기] “북에 쌀 지원하면 비핵화 늦어진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05.24 13:37
  • 호수 6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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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식량 지원을 어떻게 봐야 할까. 김정은이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는 마당에 정부는 쌀을 보내지 못해 안달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공식적으로 식량지원을 언급했다. WFP, FAO 등은 북한의 식량 수급이 최근 10년 내 최악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제임스 벨그레이브 평양사무소 대변인은 “북한 인구 2500만명 가운데 40%가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주민 대부분이 쌀 같은 곡류와 김치 등 약간의 야채만을 먹을 뿐 단백질의 경우 고기는 고사하고 달걀을 1년에 2~3번 먹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밝혔다.

식량지원을 하면 제재 효과가 반감되고 비핵화 가능성은 더 멀어질 수 있다. 북한은 식량과 석유가 있으면 자력갱생할 수 있다. 식량은 지원 받고 석유는 밀수하면 언제까지도 버틸 수 있다. 제재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광부들에게 배급을 주고 무연탄을 더 생산하게 만든다면 화력 발전량은 증가하고 산업 가동률도 올라가 유엔안보리가 채택하고 미국 등 서방세계가 동조하는 대북 제재가 유명무실해진다. 북한이 비핵화에 협조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북한이 식량 원조를 받으면 외화난이라는 큰 충격에서도 벗어난다. 대북 제재는 무역급감으로 시작되지만 소비, 특히 식량 및 외화 충격까지 가야 완성된다. 식량을 지원 받으면 식량난뿐 아니라 곡물 수입에 외화를 쓸 필요가 없어 외화 충격까지 줄일 수 있다. 제재의 세 가지 핵심 효과인 산업·소비·외화에 미치는 모든 충격이 동시에 감소하는 셈이다.  

북한이 대한민국의 식량 및 대북지원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활용하는지 조금이라도 실상을 안다면 지금처럼 퍼주기를 이어갈 수 없을지 모른다. 북은 대북지원을 ‘서울의 조공’으로 여긴다는 말이 있다.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오지랖 운운’하는 막말을 퍼붓더니 ‘공허한 말잔치와 생색내기…시시껄렁한 물물거래’ 같은 말로 대북지원을 폄훼하고 있다. 

북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차관 형태로 보낸 240만톤의 쌀을 비롯한 3조5000억원 어치의 대북지원을 상환하지 않고 있다. 천문학적인 혈세가 떼일 지경인데도 누구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다. 당시 보낸 쌀은 상당 물량이 군부대로 흘러갔고 6000만개(40kg 포장)에 이르는 쌀 포장용 마대는 전방진지 구축용으로 쓰였다. 같은 시기 북송한 4만8000톤의 감귤은 노동당 간부와 평양 특권층 선물용으로 쓰였다. 어려운 북한주민들에게 비타민 공급원이 될 것이란 바람은 퇴색했다.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등 부처는 이런 정황을 파악하고도 정부 눈치를 보며 쉬쉬하다 2008년 보수 성향 정권으로 바뀐 뒤에야 관련 사실을 언론에 밝혔다.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북에 쌀 등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굶주린 아이들은 죄가 없으니 인간적으로 도와주어야 한다는 동정론이다. 이는 북한 주민을 동물로 취급하는 잘못된 태도이다. 인간을 동물처럼 대하면 안 되는 이유는 인간은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하는 능력과 자존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정부에 대고 기초연금 올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은도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릴 능력이 있다. 핵무기는 아무나 만들 수 없다. 핵무기를 생산한다는 것은 기술과 인력(두뇌)과 경제력을 갖추었다는 증거다. 텅 빈 국고에서 무슨 돈으로 한방에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미사일을 공중에 대고 마구 쏘아댈 수가 있겠는가.  

김정은은 더욱 고도화된 핵무기 완성에 국력과 자원을 쏟아 붓기 위해 주민의 양식 문제를 외부의 손에 맡겨놓고 있다. 현지 조사를 나온 유엔 직원들을 속여 식량지원을 받아내려는 그들의 농간에 넘어가 쌀을 보내는 우를 범해선 결코 안 된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대북지원 결정을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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