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휴식
[디카시 산책] 휴식
  • 글=이기영 시인
  • 승인 2019.05.24 13:40
  • 호수 6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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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신이 발을 잠시 빠져나간 사이

발이 노동을 벗고 잠시 쉬는 사이

 

신발 주인의 즐거운 한때


우리는 신에 발을 넣는 순간부터 어디론가 가야한다. 아무 할 일도 없이 걷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무언가를 향해서, 아니면 무언가를 하기 위해 발이 아프도록 걸어야 한다. 말하자면 신발은 우리를 계속해서 걷도록 하는 채찍과 같다. 꽉 쪼이는 발의 집 속에 갇혀 벗어날 때까지는 견뎌야 한다. 밑창이 다 닳아서 한쪽으로 자꾸 기우는 일도 있고, 새로 산 신발이 맞지 않아 뒤꿈치에 물집이 생겨 절뚝거리는 일도 있다. 너무 헐렁하거나 너무 꽉 끼는 불편한 신발도 감내해야 한다. 우리가 어디론가 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발이 있어야 하고, 그 신발을 벗을 때 비로소 휴식이 찾아온다. 역지사지, 신발도 마찬가지다. 발이 신을 빠져나가는 순간부터 신발은 휴식이다. 발이 작아서 헐거워도, 발이 너무 커서 꽉 끼어도 다 닳아서 곧 밑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아도 죽을 힘으로 견딘다. 그리고 발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어디론가 가야 한다.  

저 아이는 왜 신발장에 들어가 저렇게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누워 있을까. 엄마가 더럽다고 어서 나오라고 소리를 질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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