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꽃
담장을 사이에 두고
풀이 꽃처럼 자라는 꽃밭이 있다면
은근 슬쩍 묻어가면 된다
통상적이라면 꽃이 심어져 있어야 할 화분에 풀들이 무성하다. 풀이 자라야 할 밭에 꽃이 지천이다. 풀과 꽃의 대접이 뒤바뀐 이 아이러니의 세상을 뭐라 부르면 좋을까. 아니 애초부터 풀과 꽃의 경계가 어디 있었는가. 굳이 풀이니 꽃이니 편을 가르고 경계를 지어 부른 건 인간의 얄팍한 자기중심적 기준일 뿐이다.
풀이건 꽃이건 어떤 식으로든 꽃 피우고 열매 맺어 자손을 퍼트린다. 꽃잎이 크건 작건, 아름답건 조금 덜 예쁘건 그건 인간의 기준에 의한 것이지 그들 세상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저 꽃밭에서는 풀도 꽃도 다 같은 하나의 꽃일 뿐이다. 풀도 꽃이 피고 꽃도 풀이다. 꽃이라는 이름조차 얻지 못한 수많은 꽃들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다 예쁘다. 다만 인간의 영역에서 만들어진 기준에 따라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 예쁘냐 그렇지 않느냐 입에 오르내릴 뿐이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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